출처 : http://kids.hankooki.com/lpage/edu/200511/kd2005111714271977370.htm
[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광개토 대왕릉비
<32> 영토 넓히고 백성 사랑한 대왕의 참모습 새겨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5-11-17 14:29
광개토 대왕릉비의 최근 모습. 오늘날 집안시 최고의 관광 명소가 됐다.
광개토 대왕 기리는 내용 새겨져
414년 장수왕은 아버지 광개토 대왕의 업적을 기리는 큰 비석을 무덤 곁에 세웠습니다. 이 비석은 현재 중국 길림성 집안시에 우뚝 서 있지요.
높이 6.39 mㆍ너비 1.3∼2 m의 사각 기둥 모양의 돌에 15 cm 크기의 글자(한자) 1775 자를 촘촘하게 새겨 놓았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비석이며, 여기 새겨진 내용이 1600년 전 고구려인들이 직접 기록한 것이라 무엇보다 가치가 큽니다. 고구려 역사의 연구는 물론, 동아시아 고대사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지요.
광개토 대왕릉비는 이처럼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문화 유산입니다.
지금은 세계 유산으로 지정돼 보호를 받고 있지만, 광개토 대왕릉비는 오랫동안 잊혀져 있던 그야말로 버려진 비석이었어요.
고구려가 망하고 난 뒤 많은 국가가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하면서 광개토 대왕릉비의 관리를 할 사람이 없어졌던 것입니다. 비석에는 이끼가 잔뜩 끼어 있어 글자가 있는지조차 알기 어려웠지요.
이렇게 점점 잊혀져 가던 광개토 대왕릉비의 재발견은 1880년대에 시작됩니다. 특히 1883년 일본 첩보 장교 사까와 중위가 비문의 내용을 일본에 소개한 것이 결정적 계기가 되었답니다.
당시 일본은 천황을 중심으로 한반도를 침략할 명분을 찾고 있었어요.
아득한 지난날, 일본 천황이 가야의 임나 지역에 ‘일본부’를 두고 고대 한국을 지배했다는 ‘일본임나부설’이라는 거짓으로 꾸민 역사를 만드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광개토 대왕릉비에 나오는 왜국 관련 기록은 일본에게 너무나 반가운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비문의 내용을 조작하거나 자기들한테 유리하게 해석해 버렸습니다.
그 결과 광개토 대왕릉비는 다시 발견되자마자 국제적인 논쟁거리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광개토 대왕릉비문은 왜국을 위해 씌어진 것이 아니며, 고구려인이 돌아가신 광개토 대왕을 기리기 위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광개토 대왕이 탄생하기까지의 간략한 고구려 역사와 생전의 업적, 그리고 그의 무덤을 관리하는 수묘인에 관한 법 규정이 적혀져 있습니다.
릉비가 다시 발견된 지 100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논란이 이어지는 것은 아직 우리가 고구려인의 눈으로 고구려를 바라볼 수 있는 준비가 덜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백성을 편안하게 한 임금
광개토 대왕릉비에는 광개토 대왕에 대해 이렇게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 분의 은혜와 혜택은 하늘에 가득 찼고, 위엄과 무공은 온 세상을 가득 덮었다. 옳지 못한 자들을 없애 치우고 백성들의 생업을 편안하게 하니 나라는 부유하고 백성은 넉넉하고 오곡이 풍요하게 무르익었다.”
광개토 대왕은 흔히 우리 역사 최고의 정복 군주, 넓은 영토를 넓힌 대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정식 이름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는 영토를 넓힌 임금(광개토경)이라는 뜻과 함께 백성을 평안하게 한 임금(평안호)이라고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고구려 사람들의 평가지요.
매일 싸움만 하고 영토만 넓히면서 백성들을 괴롭게 한 다른 정복 군주들과는 달리 광개토 대왕은 이처럼 백성을 사랑했던 임금이었답니다.
비문에는 또 광개토 대왕이 생전에 한 말이 적혀 있기도 합니다.
“내가 죽은 후 만 년의 이후라도 무덤을 지키는 자는 다만 내가 직접 돌아다니며 붙잡아 온 한ㆍ예 사람을 데려다가 청소를 시키도록 준비하게 하라.”
광개토대왕은 자신의 무덤이 영원히 지켜지기를 원했습니다. 장수왕 또한 아버지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이 비석을 세웠던 것입니다. 장수왕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원래 광개토 대왕릉비의 진면목인 셈입니다.
하지만 광개토 대왕의 소망은 현재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무덤은 도굴되었고, 훼손되었으며 한동안 잊혀졌습니다.
그의 소망이 이뤄지는 길은 그를 영원히 기억하고 또 바르게 그를 평가해 줄 수 있는 후손을 만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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