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blog.daum.net/espoir/8127039   

“청와대 국정원 개입 없다”, 이건 뭔데?
오주르디 2013.06.20 08:35 
 

<조선일보>가 제작하는 경제전문 매체인 <조선비즈>가 재미있는 보도를 했다. 지난 16일 문재인 의원이 기자들과 산행 도중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과 관련해 내놓은 발언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을 다룬 기사다. ‘이명박근혜’ 정권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신문이니 청와대 입장을 충분히 고려해 기사를 작성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문재인의 ‘산행 발언’에 바빠진 청와대
 
산행 당시 문 의원이 기자들에게 한 말을 요약하면 이렇다.
 
“특정후보 당선은 막아야겠다, 이런 식의 시도가 행해졌다... 더더욱 분노스러운 건 제대로 진실을 규명하고 엄정하게 처리해 국가정보기관이나 경찰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정권 차원에서 비호하려는 그런 식의 행태... 박근혜 대통령이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 와서 박 대통령에게 선거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고 그건 바람직하지 못하다. 박 대통령이 그 일을 제대로 수사하게 하고 엄정하게 처리하게 하고 그걸 국정원과 검찰 바로 서게 만드는 계기로만 만들어준다면 그것으로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촉구하고 싶다.”
 
문 의원은 발언을 통해 두 가지 ‘책임’을 거론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의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다는 점과, 그 책임을 다하기 위해 국정원과 검찰을 혁신할 책무를 박 대통령이 져야 한다는 것이다. 다소 혼란스러운 발언이다. 관권선거로 볼 수 있는 국정원 사건의 책임이 박 대통령에게 있지만, 부정선거의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는 논지다.

 
정무수석실, “기사 제목 바꿔 달라” 언론사에 전화
 
책임은 있지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으니 국정원과 검찰 개혁으로 그 책임을 다하라는 얘기다. 60명의 기자가 따라붙은 행사였기에 문 의원의 발언은 산행이 종료되기도 전에 인터넷을 통해 기사화됐고 주요 언론의 톱을 장식했다.
 
<조선비즈>는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반응과 움직임을 실감있게 보도했다. 대부분의 언론들이 문 의원이 제기한 두 가지 책임 가운데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책임’ 부분은 흐려버리고, ‘책임을 물을 수 없으니 국정원과 검찰개혁으로 대신하라’는 부분만 부각시킨 이유에 대해 언급했다. <조선비즈>의 관련 보도 내용 중 일부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은 이날(문 의원 산행일) 밤 늦은 시간에 ‘문재인, 박 대통령이 책임져야’라고 기사 제목을 단 매체에 전화를 돌려 제목을 바꿔줄 것을 요청했다고 합니다. 정무수석실은 국회 출입기자가 아닌 청와대 출입기자를 통해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실제 기사 제목이 바뀐 매체가 있습니다.”
 
다른 매체도 아닌 <조선>의 청와대 관련 보도이니 100%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가 황당한 짓을 했다는 얘기다. 박 대통령을 취재한 기사라면 언론의 관행상 제목을 바꿔달라는 항의를 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경우는 문 의원을 취재한 기사다. 청와대가 이래라 저래라 관여할 자격이 전혀 없다. 또 대언론 창구인 홍보수석실이 아닌 정무수석실이 나선 것도 부적절한 처사다.
 
실제 기사 제목 바뀐 정황들
 
<조선비즈>는 청와대의 전화로 인해 “실제 기사 제목이 바뀐 매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당시 언론들의 관련 기사 제목을 훑어보았다. 기사의 방향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진보형향의 언론들은 문 의원이 말한 ‘첫 번째 책임’을 강조한 내용으로 기사를 작성한 반면, 보수언론들은 ‘책임을 물을 수 없다’를 강조하며 ‘두 번째 책임’에 초점을 맞춘 기사를 내보냈다.
 
 
<조선> <중앙> <동아> <매경> <국민> 등은 “문재인 ‘국정원 사건 박 대통령에게 책임 물을 수 없어’”라는 제목을 뽑았고, <한겨레> <오마이뉴스> <민중의 소리> 등은 “문재인 ‘국정원 사건 분노...박 대통령이 책임져야’”라는 제하의 기사를 실었다.
 
청와대 정무수석실의 ‘언론 개입’이 먹혀들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등 몇몇 보수매체는 문 의원이 “분노”와 “책임”을 강조한 발언 그대로 기사를 작성했다. 정무수석실의 압력이 통하지 않은 언론도 일부 있었다는 얘기다.
 
‘산행 발언’에 대한 청와대의 화답은 ‘책임 면피용’
 
청와대가 바삐 움직였다는 증거는 또 있다. 문 의원이 지적한 국정원과 검찰에 대한 개혁과 관련해 청와대가 신속하게 반응했다. 문 의원의 ‘산행 발언’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연합뉴스>는 청와대 관계자 말을 빌어 “새정부 들어서 국정원 개혁이 시작됐다”며 ‘(문 의원의 요구대로) 박 대통령이 정보기관과 사정기관에 대한 개혁의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다.
 
면피용 발언이다. ‘국정원과 검찰을 개혁하는 것으로 책임을 대신해 달라’는 문 의원의 요구가 실행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함으로써 청와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이미 다하고 있다고 설파한 것이나 다름없다. 책임 회피에만 몰두하는 청와대다.
 
   
 
정무수석실의 ‘언론 단속’은 언론자유 침해에 해당한다. 청와대발 기사도 아닌데 기사 제목과 내용을 멋대로 바꾸려 했다는 건 관치언론의 악행을 그대로 답습한 행위다. 지난 7일 청와대가 국정원 사건과 관련해 “손끝하나 대고 있지 않다”고 밝힌 이정현 홍보수석의 주장과 전적으로 배치된다.
 
“청와대 개입 없다”는 주장은 거짓말
 
이 수석은 청와대가 국정원 사건 수사에 외압을 가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청와대 개입설을 목청 높여 부인하며 “청와대 개입은 없다”고 잘라 말한 바 있다. “이보다 객관적인 수사를 할 수 있을까 싶어 오히려 긍지를 느낀다”는 수사를 덧붙이기도 했다.
 
그의 말이 거짓이었다는 게 드러난 셈이다. 기사제목을 바꿔달라며 언론사에 압력을 행사하고도 “청와대 개입은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기사 하나를 놓고도 시시콜콜 간섭할 정도라면 더 큰 사안에 대해서는 어떨지 충분히 짐작이 가고 남음이 있다.
 
 
박 대통령이 문 의원의 요구에 제대로 화답해야 할 것이다. 국정원과 사정기관, 언론기사에 대한 외압과 부당한 개입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이게 문 의원이 말한 개혁의 시작이다.
 
국정원 사건 앞에서 만큼은 청와대가 자숙해야 한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시민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청와대의 부당한 개입은 진실을 원하는 시민들의 분노만 촉발할 뿐이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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