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kids.hankooki.com/lpage/study/200503/kd2005032415271345730.htm


[민족의 혼, 고구려 여행] 묘지 - 무덤 주인에 관한 기록… 귀중한 자료

<4> 세계 문화 유산 고구려 유적

김용만 (우리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시간 : 2005-03-24 15:29


모두루총에 새겨진 기록 800 자


모두루총의 묘지. 원 안은 묘지를 확대한 사진.


벽화가 그려진 고구려 무덤은 역사와 문화를 알려 주는 소중한 보물입니다. 아쉬운 점은 대부분 누구의 무덤인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지, 벽화로 미루어 왕의 무덤이라는 것, 언제쯤 만들어졌다는 것 등을 짐작할 뿐입니다.


그런데 중국 집안 시의 모두루총은 무덤 안에 먹으로 기록한 800여 자의 묘지(죽은 사람의 행적을 담은 글)가 씌어 있습니다.


10 자씩 80 줄로 된 이 글은 시신을 넣어 두는 널방으로 향하는 앞방 위에 쓰여져 있으며, 현재 약 300 자 정도만 읽을 수 있습니다. 여기엔 모두루의 조상, 특히 높은 직책에 있었던 염모와 모두루 자신의 행적까지 나타나 있습니다.


묘지에는 고구려의 추모왕을 하백의 손자이며, 성스러운 왕으로 묘사한 것이 보입니다. 또 광개토대왕은 호태성왕이며 해와 달의 아들로 기록해 놓았습니다.


고구려의 시조인 추모왕뿐만 아니라 모두루 자신이 직접 모셨던 광개토대왕도 하늘과 연결된 성스러운 인물로 그려 놓은 것입니다. 이는 당시 고구려 사람들이 고구려 왕을 성스러운 혈통의 계승자로 여기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묘지에는 또‘천하 사방이 고구려가 가장 성스러운 곳임을 다 안다.’는 강한 자부심이 넘치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구려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가졌는지, 자부심이 얼마나 컸는지도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모두루총 안에는 묘지만 있을 뿐 벽화조차 없습니다. 하지만 묘지가 고구려 역사를 아는 데 귀중한 자료이기 때문에, 당당히 벽화 고분의 하나로 세계 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안악3호분 · 덕흥리 고분에도 있어


안악3호 벽화 고분의 묘지(위쪽)와 덕흥리 벽화 고분의 묘지.


모두루총 외에도 안악3호분ㆍ덕흥리 고분에 묘지가 씌어 있습니다. 안악3호분은 묘지 때문에 무덤이 357년에 만들어졌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덕흥리 고분은 광개토태왕의 부하인 진의 무덤이며 그가 죽은 후 408년에 무덤이 완성돼 그의 시신이 묻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두 무덤이 만들어진 때를 알게 됨에 따라, 다른 무덤도 비교해 가면서 언제쯤 만들어졌는지 알아 냈습니다. 나아가 다른 나라의 벽화 고분과 비교할 수도 있었고, 그 결과 안악3호분은 당시 딴 나라의 고분보다도 웅장하고 벽화 기법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976년 평안남도 남포시에서 발견된 덕흥리 벽화 고분의 경우는 묘지뿐만 아니라, 곳곳에 벽화의 장면을 설명해 주는 글이 있습니다. 특히 고구려 역사를 공부하는 학자들을 놀라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무덤의 주인공인 진이 유주자사의 자리에 있을 때에 부하인 13 명의 태수로부터 업무 보고를 받는 장면인데, 이들이 지금의 북경 일대를 다스리는 북평 태수ㆍ연군 태수 등으로 기록돼 있다는 사실입니다.


광개토대왕의 부하였던 진이 현재의 북경 일대를 지배하는 지방 장관이라는 것은, 당시 고구려가 요하를 넘어 광대한 영토를 개척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됩니다. 고구려 벽화 고분들은 이처럼 고구려 역사를 알려 주는 커다란 보물 창고이자 우리가 풀어야 할 비밀의 문입니다.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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