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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태왕 광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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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제왕 광개토 9 - 407년 광개토대왕이 향한곳은? - 히스토리어  http://tadream.tistory.com/385
      고구려의 태왕 광개토 10 - 단군의 후예 四海를 평정하다 - 히스토리어  http://tadream.tistory.com/386
      광개토대왕의 북방 대원정 1 - 391년 거란 정벌 - 히스토리어  http://tadream.tistory.com/389
      광개토 대왕의 북방대원정 2 - 비려 원정의 중간 거점지 양평도 - 히스토리어  http://tadream.tistory.com/390


고구려의 태왕 광개토 10 - 단군의 후예 四海를 평정하다.

고구려의 19대 왕 광개토, 그는 남으로는 백제를 평정하고, 신라를 신하국으로 삼았으며 왜를 격파하였다. 또 서쪽으로는 후연을 격파하였고 북쪽으로는 거란과 비려를 정벌하였으며, 동으로는 숙신과 압로족을 귀속시키는 등 고구려 전성기를 열었다. 그런 광개토태왕이 마지막으로 향한곳은 동부여였다. 태왕릉 비문에 의하면,  동부여를 추모왕(동명성왕)때의 속민으로 낮추어 부르고 있다.  이와같은 관점은 당시 고구려가 동북아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고구려중심의 역사관이라 할 수 있다. 동부여는 고구려 3대왕 이었던 대무신왕에 의해 정벌되었는데,  광개토태왕 때까지 고구려의 속국 형태로나마 명맥을 유지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 기록은 비문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20년(410) 경술(庚戌) 동부여(東夫餘)는 옛적에 추모왕(鄒牟王)의 속민(屬民)이었는데, 중간에 배반하여 (고구려에) 조공을 하지 않게 되었다. 왕이 친히 군대를 끌고가 토벌하였다. 고구려군인 여성(餘城;동부여의 왕성)에 도달하자, 동부여의 온나라가 놀라 두려워하여 (투항하였다). 왕의 은덕이 동부여의 모든 곳에 두루 미치게 되었다. 이에 개선을 하였다. 이때에 왕의 교화를 사모하여 개선군(凱旋軍)을 따라 함께 온 자는 미구루압로(味仇婁鴨盧), 비사마압로(卑斯麻鴨盧), 타사로압로( 社盧鴨盧), 숙사사압로(肅斯舍鴨盧), □□□압로(□□□鴨盧)였다. 무릇 공파(攻破)한 성(城)이 64개, 촌(村)이 1400이었다.

이 기록을 통해 보면 태왕이 동부여에 대한 원정을 단행한 주된 이유는 조공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동부여는 그동안의 고구려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꾀하려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군사적으로 매우 열세에 있었던 동부여가 이 같은 움직임을 보였던 것은 아마도 압로족이나 숙식족과의 연합이 성립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백제나 후연국마저 압도적으로 격파한 고구려군의 막강한 군사력을 동부여로서는 당할 수 없었다. 또한 압로족과의 연합관계로 그리 견고하지 못하였을 것이고, 고구려 군이 동부여의 도읍인 여성에 입성하자 반격할 기회조차 찾지 못하였던 것이다.


이미지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고구려 전성기 시절 영토이다. 하지만 광개토 대왕 비려(거란일족) 원정기를 살표보면 대싱안링 산맥 서쪽까지 진출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따라서 광개토 대왕 때 이미 대싱안링 산맥 동쪽은 모두 고구려의 영토로 편입되었을 것으로 본다. 또 우리나라에서 공식 인정하고 있는 이 지도에는 동부여에 복속에 따른 영역표시가 애매할 뿐더러, 북부여에 대한 영토 해석을 지나치게 소극적으로 하고 있다. 또 남쪽으로도 한강 바로 이남까지 광개토대왕은 진출하였지만 여기에 대한 표시도 미흡하다.

단군 해모수의 아들인 추모성왕, 그리고 그의 17세 후손인 광개토... 다만 삼국사기에는 광개토대왕을 19대 왕으로 보고있어 여기에 대한 논란의 소지는 있다. 하지만 5대 모본왕처럼 반정에 의해 살해된 왕을, 역대 왕위에서 강등시켜 삭제하였다면 17대나 19대는 모두 같은 왕대일 수 있다. 즉 조선시대 연산군이나 광해군처럼, 반정에 의해 불명예스럽게 왕위에서 물러난 왕을 고구려의 관점에서는 한세대로 취급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반정에 의해 살해된 차대왕 역시 왕위에서 제외시켰다면 태왕은 정확히 17대 왕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고구려의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17대 제왕이었던 태왕의 첫 부분에는 다음과 같이 대왕이 치세를 찬하였다.

17세손에 이르러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이 18세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대왕(永樂大王)이라 하였다. (왕의) 은택(恩澤)이 하늘까지 미쳤고 위무(威武:위엄있는 무력)는 사해(四海)를 평정하였다. (나쁜 무리를) 쓸어없애니, 백성이 각기 그 생업에 힘쓰고 편안히 살게 되었다. 나라는 부강하고 백성은 유족해졌으며, 오곡이 풍성하게 익었다. (그런데) 하늘이 (이 백성을) 어여삐 여기지 아니하여 39세에 세상을 버리고 떠나시니, 갑인년(甲寅年) 9월 29일 을유(乙酉)에 산릉(山陵)으로 모셨다. 

四海平定...그것은 광개토대왕의 업적을, 태왕은 발해만에서부터 현재 불러디보스독까지, 그리고 흑룡강 최북단에서부터 한반도 최남단 김해지역까지.... 그야말로 한반도를 둘러싼 그 모든 땅과 바다를 평정하였으며, 고구려를 부국강병으로 이끌었던 것이다.

광개토 태왕이 남긴 여운은 그의 업적만큼이나 많다.개인적으로는 태왕의 못 다 이룬 꿈 중 왜 삼국통일을  눈앞에 두고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크다. 고구려가 비록  백제와 신라를 신하국으로 삼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조공관계를 성립시킨 것으로 완전한 형태의 통일이라고 할 수 없다. 후연과의 치열한 접전이 태왕의 발목을 잡았던 것일까? 또 동부여를 포함한 북변의 정치적 불안정도 삼국통일에 전력을 기울일 수 없었던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만약 삼국통일을 강행할 경우 백제와 신라에선 부흥운동이 일어났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고구려군 만으로는 그 모든 지역을 막을 수 없게 된다. 그리고 북방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무렵,  태왕은 39세라는 젊은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장수왕은 광개토대왕의 위업을 이어받아 고구려의 전성을 훌륭하게 꽃피워 나갔지만, 역시 대왕의 위무에는 미치지 못하였다. 



391년

 광개토태왕 즉위

392년

 백제 공격하여 10성 함락, 
 거란을 정벌하여 500여 명을 포로로 함

393년

 백제가 침입하자 이를 격퇴, 
 평양에 9사(寺) 창건하여 불교 장려함

394년

 백제와 수곡성(水谷城) 아래에서 싸워 승리, 
 남쪽에 7성을 쌓음

395년

 백제와 패수(浿水)에서 싸워 승리, 비려(碑麗) 정벌

396년

 백제 공격하여 58성 차지, 
 백제 아신왕의 동생과 대신을 인질로 잡아 옴

397년

 후연의 요동성을 점령함

398년

 숙신을 정벌함

399년

 백제· 왜 연합군 신라 칩입, 
 신라가 고구려에 구원 요청

400년

 백제·가야·왜 연합군 격파

402년

 후연의 숙군성(宿軍城)을 침

403년

 후연을 공격함

404년

 대방(帶方)에 침입한 백제·왜 연합군을 전멸시킴

405년

 요동성(遼東城)을 공격한 후연의 모용희 군대를 격퇴

406년

 목저성(木抵城)을 공격한 후연의 모용희 군대를 격퇴

410년

 동부여를 통합함

413년

 광개토태왕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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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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