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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구려의 태왕 광개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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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의 제왕 광개토 9 - 407년 광개토대왕이 향한곳은?

서기 407년 정미년, 광개토 대왕은 무려 보기병 5만명을 동원한 대규모 원정을 단행하였다. 이에 대한 기록은 오직 광개토대왕릉비에만 나타나 있는데, 문제는 그 대상이 되는 지역이 훼손되어 정확한 해석이 도저히 불가능 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선 407년 광개토 대왕 재위 17년의 기사를 살펴 보자.

17년, 정미년에 보병, 기병 5만명을 출병시키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문의 내용이 지워져 있음 .... 왕은 사방포위 작전을 내렸다. 적은 대부분 궤멸되었으며 , 개갑 1만여 령과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군자기계를 획득하였다. 돌아오는 길에 사구성, 누성, 우불성, ??성을 격파 하였다. 

이 기사에 따르면 407년에 있었던 대원정은 고구려의 대승으로 끝났다. 그리고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이 시기의 원정을 백제로 보고 있다. 그 주된 근거로는 광개토대왕 재위 14년, 서기 404년에 백제가 대방지역을 침략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407년에 있었던 전쟁은 백제를 견제하기 위한 보복전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관점으로 매우 합리적인 사료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에서도 보듯 가장 결정적인 내용이 훼손되어 있어, 백제 원정설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 더구나 고구려는 이미 396년 원정이나 관미성 전투등에서 이미 한강 북부전역을 장악한 상태였다. 그런데 또다시 백제의 북변을 공격하여 6개성을 함락시켰다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다. 왜냐면 백제는 한강 북부지역을 뺴앗기긴 하였으나, 여전히 한강남변의 도읍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였다. 관미성 전투까지 생각한다면 70여개에 이르는 한강북부의 성을 점령한 상태인데, 과연 또다시 함락시킬 성이 남아있을지도 의문이다.

물론 백제의 404년 대방지역 침공에 대해, 고구려가 보복전을 감행하였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으나, 그것이 반드시 407년의 기사와 일치한다고는 보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삼국사기에는 서기 405년과 406년  후연의 고구려 침공에 대한 기사내용이 보인다. 그리고 후연은 408년 돌연 멸망하고 북연정권이 성립하게 된다. 그렇다면 407년에는 과연 무슨일이 일어났겠는가? 바로 광개토대왕의 후연원정인 것이다. 

서기 406년 묵저성 전투에서 고구려는 후연에게 대승을 거두게 된다. 더구나 목저성 전투는 겨울 12월에 벌어진 전투였다. 그렇다면 고구려가 목저성 전투의 승리에 힘입어 대규모 원정을 단행하였음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더구나 후연은 고국원왕 시절 고구려 도읍이었던 환도성을 침공하여, 고국원왕의 어머니와 왕비, 그리고 선대왕이었던 미천왕의 묘를 파헤치고 시신을 강탈해 가기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고구려로서는 전무후무한 치욕이었으며, 고국원왕이  평양성에서 전사한 일보다 더욱 깊은 원한을 갖게 하는 일이었을 것이다. 또 돌아오는 길에 사구성등을 격파하였다는 기사내용도 주목할만 하다. 즉 5만명을 동원하여 적을 포위공격한 일은 매우 기습적인 타격이었으며, 적국 깊숙한 곳에서 벌어진 전투였음을 시사하는 일이다. 개인적으로 이 사방포위작전은 후연의 도읍에서 벌어졌던 일이라 주장한다. 후연이 고구려의 환도성을 유린하였듯, 이번에는 고구려가 후연의 도읍을 포위공격하여 결정적인 승리를 거두고 돌아오는 길에 6개성을 격파한 것이었다. 그리고 고구려의 침공으로 힘이 크게 약화된 후연은, 곧바로 북연정권과 교체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 모든 내용은 추측에 불과하다. 비문의 내용이 정확히 해독된다면, 어쩌면 위와 같은 모든 주장은 백지화 될 수도 있다. 아직 정확히 광개토 대왕이 어느곳을 향하였는지 결정할 수는 없다. 다만 당시 역사적 상황이나 개연성으로 볼 때 백제보다는 후연이었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407년의 대원정 이후 광개토대왕의 영토확장 사업도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이후 동부여에 대한 원정도 단행하는데, 그것은 조공관계에 있었던 동부여를 복속시키기 위한 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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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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