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db.history.go.kr/download.do?levelId=hn_019_0070&fileName=hn_019_0070.pdf
* "발해 城址의 조사와 연구 - 송기호" 중 "Ⅴ.연구 현황과 문제점 - 3.동아시아 도성 체제와의 관련"만 가져왔습니다.

발해 성지(城址)의 조사와 연구
宋 基 豪  1989년
 

Ⅰ. 머리말

발해가 주요 거점으로 삼고 있던 만주 동부 지역에는 발해의 유적들이 상당수 남아 있어 문헌 자료가 부족한 발해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발해 유적에 대해서는 일제시대부터 발굴, 조사되기 시작하여 현재에 이르러서는 발해의 중심지였던 만주 동부 지역뿐 아니라 북한, 소련에서도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발해유적들에는 성지, 고분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이 중 발해 성지로서 현재까지 발견 조사된 것은 90개정도에 이르고 있다.1)

그런데 이렇게 많은 성지 중에서 동경성을 비롯한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본격적인 발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고 있고, 단지 지표조사 과정에서 채집된 유물이나 겉으로 보이는 성의 구조를 통하여 발해시기의 유적으로 판단하는 실정이기 때문에, 발해 성지 연구는 아직도 초보적인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제 이러한 조사 성과를 바탕으로 발해의 도성, 지방도시성들의 조사현황을 소개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자 하며, 이에 덧붙여 이러한 조사를 기초로 한 발해 성지의 연구 현황과 그에 관련된 몇 가지 문제점을 간단히 검토하여 보고자 한다. 

Ⅱ. 성지 조사 현황   http://tadream.tistory.com/14500 

Ⅲ. 도성  

1. 오동성(敖東城)  http://tadream.tistory.com/14312
2. 동경성(東京城)  http://tadream.tistory.com/14455
3. 팔련성(八連城)  http://tadream.tistory.com/14374  

Ⅳ. 지방도시성

1. 부성(府城)
    1) 서고성(西古城)  http://tadream.tistory.com/14201
    2) 북청토성(北靑土城)  http://tadream.tistory.com/14170
    3) 소밀성(蘇密城)  http://tadream.tistory.com/14121
    4) 대성자고성(大城子古城)  http://tadream.tistory.com/14123
 
2. 주성(州城)
    1) 온특혁부성(溫特赫部城)  http://tadream.tistory.com/14368
    2) 살기성 (薩其城)  http://tadream.tistory.com/14203
    3) 남성자고성(南城子古城)  http://tadream.tistory.com/14171
    4) 크라스키노(Kraskino) 성지  http://tadream.tistory.com/14204
 
3. 현성(縣城)
    토성둔고성(土城子古城)  http://tadream.tistory.com/14173
 
4. 기 타
    1) 성산자산성(城山子山城)  http://tadream.tistory.com/14175
    2) 하남둔고성(河南屯古城)  http://tadream.tistory.com/14176

Ⅴ. 연구 현황과 문제점

1. 성지 편년의 문제  http://tadream.tistory.com/14645
2. 고구려 성지와의 관련  http://tadream.tistory.com/14686
3. 동아시아 도성 체제와의 관련  http://tadream.tistory.com/14719

Ⅵ. 맺음말

이상으로 발해 성지의 조사 내용과 이를 바탕으로 한 연구 현황을 살펴보고 약간의 문제점을 제기하여 보았다. 이제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함으로써 맺음말에 대신하고자 한다.

발해의 성지로 조사된 것은 현재 90개 가까이 되는데 이 중에는 발해 시기에만 사용된 것이 있는가 하면 그 이전에 만들어져 발해 시기에 다시 사용된 것도 있고, 나중에 요, 금 등에 의해 계속 사용된 것도 있다. 또 여기에는 평지성, 산성 뿐만 아니라 보루, 차단성 등도 포함되어 있고, 재료상으로 토성, 석성, 토석 혼축성 등으로 다양하며, 형태상으로도 장방형, 방형, 부정형 등 여러가지가 있다. 이렇게 성들이 다양하지만 아직은 정식 발굴된 것이 극소수에 불과하여 발해 시기의 성들로 확정하기에는 미흡한 것들도 포함되어 있는 실정이다. 장차 이 성들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단지 지표조사 차원에서 벗어나 정식 발굴이 요망된다.

이상의 많은 성 가운데 중요한 것들을 도성과 지방성으로 나누고 지방성은 다시 부성(府城), 주성(州城), 현성(縣城)으로 나누어 각 성마다 위치 및 주변 환경, 발굴 조사 경위, 구조 및 출토 유물, 성의 성격에 대한 논의의 경과, 주변의 유적 순으로 정리하여 보았다. 우선 도성으로서는 첫 도읍지였던 오동성(敖東城)을 비롯하여 가장 오랫동안 수도로 사용되었던 동경성(東京城), 일시 도읍을 정하였고 동경용원부(東京龍原府)의 소재지였던 팔련성(八連城)을 살펴보았다. 또 일시적으로 도읍지로 사용되었는지 논란이 있는 서고성(西古城)은 뒤의 부성에서 정리하였다.

한편 발해는 지방을 5경(京), 15부(府), 62주(州), 10여개의 현(縣)으로 편제하여 통치하였으므로 지방 도시의 성으로서 언급되고 있는 것들을 선택하여 정리하였다. 먼저 부성(府城)으로는 중경현덕부(中京顯德府)의 소재지로 여겨지는 서고성(西古坡), 남경남해부(南京南海府)의 소재지로 여겨지는 북청(北靑)토성, 장령부(長嶺府)의 소재지로 여겨지는 소밀성(蘇密城), 솔빈부(率賓府)의 소재지로 여겨지는 대성자(大城子)고성을 살펴보고, 그 다음 주성(州城)으로 온특혁부성(温特赫部城), 살기성(薩其城), 남성자(南城子)고성, 크라스키노(Kraskino)성지를 살펴보았으며, 상경 용주(上京 龍州) 관할의 장평현(長平縣) 소재지로 언급되고 있는 토성자(土城子)고성도 살펴 보았다. 기타 동모산(東牟山)에 해당하는 곳으로 설명되기도 하는 성산자(城山子)산성, 내부에서 발해 고분이 발견되었던 하남둔(河南屯)고성도 추가로 정리하였다.

최근에 이르면 이상과 같은 발해 성지 조사 내용이 축적됨에 따라 이를 토대로 보다 구체적인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러한 연구로서 편년 기준의 문제, 고구려 성지와의 관련, 동아시아 도성 체제와의 관련 문제를 정리하고 거기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간단히 지적하여 보았다. 우선 성지 편년 기준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에는 성의 구조와 출토 유물 양식이라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 전자는 성벽에 나타나는 치(雉), 옹성(甕城) 등 의 유무가 주로 고려되고 있고, 후자는 기와와 도기(陶器) 양식이 주로 고려되고 있다. 특히 전자의 경우 만주 지역에서 치, 옹성이 나타나는 것은 요, 금 이후로서 발해에서는 이러한 시설들이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증국적인 관점에서만 고찰하려는 편견에서 비롯된 것으로 고구려에서는 초기부터 이미 이러한 시설들이 나타나고 있고 이 영향으로 발해에서도 이러한 시설들이 나타날 수 있음을 지적하여 보았다. 그렇게 보아야만 발해 유적으로 지적되고 있는 오동성(敖東城), 흑석(黑石)고성, 북청토성 등에서 치, 옹성 등이 나타나는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고구려 성지와의 관련인데, 여기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치, 옹성 시설의 영향 외에 평지성과 산성이 결합된 방어체제를 고찰하였다. 이러한 방어체계는 고구려에서 발생하여 주변국으로 확산되어 갔으며, 발해도 그러한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이러한 영향이 단지 발해주체민족인 말갈족이 고구려에 이웃하였었고, 일시 고구려에 복속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것이고 고구려인이 발해 건국의 주축을 이루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보았다.

그러나 초기 에 고구려 문화 요소를 농후하게 반영하던 발해 문화는 상경으로 천도하면서 자신의 문화 기틀을 다져나가기 시작하자 당의 문화를 상당히 흡수하기 시작하였고, 따라서 도성 체제도 당의 장안성을 모방하여 8, 9세기에 동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큰 도성을 가지게 되었다. 이러한 당의 도성 형태를 본뜬 것으로는 동경성 외에 팔련성, 서고성 및 대성자고성이 지적되고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에 당시 동아시아에서의 발해의 지위를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발해 유적들에 대한 현지 조사가 직접 진행될 수 없는 현실 여건으로 인하여 세부적인 내용에서 오류가 나타날 수 있음은 어쩔수 없으므로 일부 오류가 있더라도 양해를 바란다. 또 성의 명칭상으로 통일이 되어 있지 않는 점이 지적될 수 있는데 이것은 현지에서 쓰는 용어를 되도록이면 그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주석

1) 발굴 및 지표조사 보고로서 주요한 것은 다음과 같다,
東亞考古學會, 《東京城―渤海國上京龍泉府の發掘調査―》東方考古學叢刊 甲種 제5책, 1939
鳥山喜一·藤田亮策, 《間島省古蹟調査報告》滿洲國 民生部, 1942
齋藤甚兵衛, 《半拉城―渤海の遺蹟調査―》琿春縣公署, 1942
齋藤甚兵衛·山本守, 《琿春·敦化》滿洲事淸案內所, 1943
齋藤甚兵衛(優), 〈間島省海蘭平野の渤海遺蹟〉《考古學雜誌》40―1, 1954
黑龍江省博物館, 〈牡丹江中上游考古調查簡報〉《考古》1960―1
單慶麟, 〈渤海舊京城址調査〉《文物》1960―6
王承禮, 〈吉林敦化牡丹江上游渤海遺址調査記〉《考古》1962―1
조중공동고고학발굴대, 《중국 동북지방의 유적 발굴 보고(1963∼1965)》 사회과학원출판사, 1966
張太湘, 〈大城子古城調査記〉《文物資料叢刊》4, 1981
李健才·陳相偉, 〈渤海的中京和朝貢道〉《北方論叢》1982―1
董學增, 〈吉林東團山原始漢高句麗渤海諸文化遺存調查簡報〉《博物館研究》1982-1
王俠, 〈琿春的渤海遺迹與日本道〉《學習與探索》1982―4
李健才, 〈樺甸蘇密城考〉《黑龍江文物叢刊》1983―2
鄭永振, 〈和龍縣龍海古迹調査〉《黑龍江文物叢刊》1983―2
嚴長錄, 〈和龍縣西古城及其附近渤海遺迹調査〉《傅物諸研究》1984―1
李健才, 〈琿春渤海古城考〉《學習與探索》1985―6
延邊朝鮮族自治州博物館, 〈吉林汪清考古調査〉《北方文物》1985―4
리준걸, 〈함경남북도 일대의 발해 유적 유물에 대한 조사 보고〉《조선고고연구》1986―1
張殿甲, 〈渾江地區渤海遺迹與遺物〉《博物館研究》198―1
이보다 자세한 목록은 다음의 발해사연구 논저 목록을 참조 바람.
왕승례 저·송기호 역, 《발해의 역사》한림대학 아시아문화연구소 번역총서 1, 1987 참고자료 1


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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