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783
[사법농단 톺아보기 ①] 재판을 베팅한 내부자들
천관율·김연희 기자 호수 638 승인 2019.12.10 11:44
사법농단은 헌법의 세계가 내부자들의 세계로 미끄러진 사건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거래와 흥정의 원리로 대체된다. 법원은 조직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재판을 베팅했다.
정말 이런 법원이어도 괜찮습니까.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대법원(이하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농단 사태가 불거지고 1000일이 흘렀습니다. 2017년 3월6일 <경향신문>은 이탄희 판사(현 변호사)가 법원행정처로 발령을 받았다가 부당한 지시를 받고 사표를 썼다는 기사를 냈습니다. 이후 법원행정처에 판사 뒷조사 파일이 있다는 의혹이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이 박근혜 청와대와 거래하기 위해 재판에 개입한 정황도 여럿 드러났습니다. 소송 동료 세 명을 먼저 보내고 혼자 결과를 기다리던 일본 강제징용 피해자 이춘식씨, 대법원 판결 여파로 동료의 죽음을 겪어야 했던 KTX 여승무원 등, 당사자들에게는 온 삶이 걸린 재판입니다. 그런 재판이 양승태 대법원의 좌판에 흥정거리로 쭉 깔렸던 겁니다.
지난해 5월29일 대법원에 진입해 농성을 벌이던 KTX 해고 여승무원이 로비에 걸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초상화를 카메라에 담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1000일 동안 한국 사회는, 법원이 스스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는지 지켜봤습니다. 결과는 다들 확인한 대로입니다. 해법은 고사하고 진단부터 후퇴를 거듭한 1000일이었지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사법농단 사태의 핵심 인물들은 재판에서도 반성하는 기색이 없습니다. 법원 내부 기류도 많이 다르지는 않습니다. 경력이 긴 법관들은 “법원행정처가 늘 해오던 일을 하던 와중에, 임종헌 등 몇몇이 ‘오버’하는 바람에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오버한 몇몇’만 내보내고 ‘선’만 넘지 않도록 하면 이대로도 큰 문제는 없다는 얘깁니다.
과연 그럴까요. 사법농단 사태의 본질이 ‘유난히 권위적인 양승태’와 ‘과잉 충성하는 임종헌’ 둘로 설명될까요. 일련의 사태에서 우리는 까다롭고 근본적인 질문의 꾸러미를 받아들었습니다. 판사들이 재판을 거래 대상으로 쓰는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됩니다. 판사도 감시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판사를 감시하는 외부(청와대든 국회든)의 힘이 지나치게 세면, 이들의 입맛대로 재판이 휘둘릴 수 있습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이렇게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재판 독립은 헌법정신입니다. 동시에, 재판은 사람 목숨까지 거둘 수 있는 권력입니다. 모든 권력은 견제와 균형으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 역시 헌법정신입니다. ‘재판 독립의 원리’와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본질상 충돌합니다. 이 딜레마를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사법농단의 주역은 법원행정처였습니다. 법원행정처는 이 딜레마를 그럭저럭 다뤄내는 조직처럼 보였습니다. 국회나 청와대가 재판에 침투하려는 시도를 들어주는 척 흘려내면서, 한편으로 입법이나 예산 등 법원이 필요한 자원을 따내오는 기구로 보였습니다. “법원행정처 구조가 이상적이라고는 못해도 필요악은 된다”라는 정서가 법원 내에 있었던 것도 이런 이유가 큽니다. 그런데 이 법원행정처가 사법농단의 엔진이었습니다. 이제 이 모델은 폐기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안은 뭘까요?
그러니까 사법농단이란 사법부가 가진 구조적 딜레마가 극적으로 뒤틀려 분출한 사건이었습니다. “나쁜 놈들이 나쁜 짓을 했으니까 나쁜 놈들을 몰아내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으로는 아무런 답도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정말 이런 법원이어도 괜찮습니까. 우리의 답이 ‘아니다’라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이런 법원’이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작업입니다.
헌법은 권력을 다루는 계약서입니다. 헌법의 세계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권력은 위험한 물건이니까, 그 누구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어서는 안 됩니다. 입법부와 행정부와 사법부는 서로 다른 권력을 가짐으로써,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룰 것이라고 헌법의 세계는 기대합니다. 입법·행정·사법의 핵심 인물들이 서로 결탁하고 거래하면서 각자 원하는 것을 가져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이것은 ‘내부자들’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는 거래와 흥정의 원리로 작동합니다. 각자가 가진 권력은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데 쓰입니다. 이런 것을 정치학에서는 ‘딥스테이트(Deep State)’라고 부릅니다. 헌법의 세계보다 깊숙한 곳에 내부자들의 세계가 있고, 그게 실제로 나라를 움직입니다.
사법농단은 헌법의 세계가 내부자들의 세계로 미끄러진 사건입니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거래와 흥정의 원리로 대체된 사건입니다. <시사IN>은 3회에 걸쳐 이 미끄러짐을 다룹니다. 1부는 여러 권력기관을 넘나드는 내부자들의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밝힙니다. 여기서 우리는, 법원이 인권과 법치를 보호하는 사법기구가 아니라, 조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자원을 베팅하는 관료기구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베팅하고 행정안전부가 티오(TO·공무원 정원)를 베팅하듯 법원은 재판을 베팅합니다.
2부는 관료적 내부 정치의 한 플레이어인 법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다룹니다. 블랙박스라고 할 수 있는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법원의 내부자들’이 작동하는 방식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이들은 법원 안의 법원이었습니다. 딥스테이트의 부속이었으니 ‘딥코트(Deep Court)’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효율적이고 강고해 보이던 이 딥코트가 실제로 얼마나 취약하고 허망한지도 2부에서 드러납니다. 딥코트는 몇 명 되지도 않는 법원 내 소모임에 과민 반응하다가 판사 사찰에 손을 댔고, 그에 항의하는 젊은 판사 한 명의 문제 제기로 속살을 다 드러내야 했습니다.
3부는 내부자들의 세계를 다시 헌법의 세계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다룹니다. 그러려면 ‘재판독립의 원리’와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충돌하는 문제를 정면으로 보아야 합니다. 내부자들의 세계는 이것을 얼버무릴 수 있었지만, 그래서 내부자들의 세계에서 더 편안함을 느끼는 법관도 많았지만, 헌법의 세계로 가려면 이 딜레마를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 어렵고 답 없는 문제를 정면으로 다룰 준비가 될 때, 우리는 사법농단에서 교훈을 얻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오른쪽)과 박근혜 대통령 면담에 앞서 법원행정처는 ‘BH 설득방안’ 문건을 작성했다. ⓒ연합뉴스
2013년 12월1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비서실장 김기춘은 비밀리에 ‘소인수회의’를 연다. 2012년 대법원은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취지로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이 판결이 한·일 관계에서 문제가 될 것이라고 판단한 청와대는 외교부 장관 윤병세, 법무부 장관 황교안, 그리고 법원행정처장인 차한성 대법관을 불러 모았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이 불러올 파장을 외교부 장관이 설명했다. 대법원 확정판결을 뒤집거나 최소한 질질 끌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차한성 대법관은 “행정부가 재판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냐”라며 단호하게 자리를 박차고 나갔을까.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그러지 않았다. 오히려 차 대법관은 이렇게 말했다고 공소장은 적는다. “왜 이런 이야기를 2012년 대법원 판결 때 안 했느냐. 브레이크를 걸어줬어야지.” 헌법이 요구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는 이렇게 내부자들의 세계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2015년 7월28일.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 1심의관 시진국 판사는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문건 하나를 보고한다. 이름은 ‘상고법원 입법 추진을 위한 BH(청와대) 설득방안.’ 붉은색 한자로 ‘대외비’가 찍혀 있었다. 청와대는 법원의 ‘라이벌’인 검찰에 기울어 있어서 법원 말을 안 들어준다(“VIP 핵심 보좌진의 친검찰 구성의 틀도 유지”). “적극적 협상·설득 카드 제시”가 필요한 시점이다. 어떻게? “정부 운영에 사법부가 기여해온 구체적 판결례를 언급”하면서 “향후 국정 운영에 대한 지원과 협조 약속”을 내놓는다. 대통령 관심사에 맞춰 “창조경제 구현을 위한 사법한류”도 추진한다. 거래와 흥정의 원리에 따라, 재판이 좌판에 깔렸다. ‘사법한류’도 민망한 덤으로 깔렸다.
사법농단은 헌법의 세계가 내부자들의 세계로 미끄러진 사건이다.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거래와 흥정의 원리로 대체된 사건이다. 법원은 인권과 법치를 보호하는 사법기구가 아니라, 조직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자원을 베팅하는 관료기구처럼 움직였다. 기획재정부(기재부)가 예산을 베팅하고 행정안전부가 티오(TO·공무원 정원)를 베팅하듯 법원은 재판을 베팅했다. 그래서 사법농단은 법원만 봐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입법·행정·사법의 내부자들이 뒤엉켜 펼치는 게임을 이해해야 실체가 보인다.
‘질문은 되지만 개입은 안 된다 규칙’
법원행정처는 강력한 대국회 로비 머신이다. 대국회 로비를 맡은 판사들은 법원행정처 심의관, 실장, 차장, 처장으로 승진하며 계속 국회를 맡는 경향이 있다. 심의관과 초선 의원으로 처음 인연을 맺은 사이가 쭉 이어져서 고위 간부와 다선 의원까지 간다. 사법농단의 주역인 임종헌 전 판사는 법원행정처 심의관, 기획조정실장, 차장을 두루 거쳤다. 임종헌 차장 시절 상급자인 박병대 법원행정처장과 양승태 대법원장, 하급자인 이민걸 기조실장도 비슷한 커리어다.
A 국회의원은 더불어민주당 소속 중진이다. 2004년에 처음 국회의원이 될 때부터 알고 지낸 박병대·임종헌·이민걸 라인이 10년쯤 지나니 양승태 대법원에서 고스란히 법원행정처 핵심이 되어 있었다. 대외관계 역량을 가진 이런 사람들이 법원행정처의 중핵으로 오래 활동하기 때문에 인맥과 숙련이 쌓인다. 검찰만 해도 요직인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이 잠시 스쳐가는 정도라 이런 장기적 관계가 형성되기 어렵다. A 의원은 이게 법원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법원 쪽 얘기는 정반대다. 검찰은 형식상 법무부 외청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법무부가 검찰의 정부 출장소여서 검찰의 영향력이 훨씬 막강하다고 본다. 이런 일방적 구도에서 법원행정처는 법원이 가진 최소한의 자구책이라는 생각이 법원 주류다. 이것마저 없다면 국회와 청와대가 검찰 쪽 주장에 쏠릴 것이고, 형사소송법 등이 검찰이 수사하기 편리하도록 바뀔 것이다. 그러면 인권이 취약해진다. 법원 주류 논리를 따라가다 보니 법원행정처가 인권의 방파제가 되었다. A 의원과 논리의 출발은 다르지만 결론은 같다. 법원행정처는 대체 불가능한 역할을 한다. 그러니 약간의 일탈은 필요악으로 봐야 한다.
여기서 ‘약간의 일탈’이란 뭘까? 내부자들의 관점을 따라가보자. 법원행정처가 특정 재판의 결과를 입맛대로 내려 하거나 재판부의 결론을 바꾸려 들면, 그건 심각한 일이다. 재판 자체에 개입하지 않고 재판부 의견을 취재해 나름대로 예측을 하려 든다면, 그건 좀 부적절한 대로 참을 만하다. 법원행정처도 사심이 있어서 묻는 게 아니다. 국회나 청와대가 물어보면 알려는 줘야 하니까 묻는 것이다. 이것이 ‘약간의 일탈’이다. 양승태 대법원은 이 선을 넘어 재판 자체에 개입하는 과욕을 부려서 문제였다. 이런 틀에서 보면, 사법농단 사건이란 ‘유난히 권위적인 양승태’와 ‘과잉 충성하는 임종헌’ 조합의 과속 스캔들이다. ‘오버’하는 사람들을 제거하고 법원행정처가 다시 선 안쪽에서만 활동하면 본질적 문제는 없다. 이것을 우리는 ‘질문은 되지만 개입은 안 된다 규칙’이라고 부르자.
법원과 국회의 내부자들이 모두 이 규칙에 기대어 움직인다. 이러면 담합이나 재판 개입이 아니라 정보 교류다. 숨어서 하는 나쁜 짓이 아니라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다. 현실의 내부자들은 영화 <내부자들>과 그래서 다르다. 현실의 내부자들은 이게 담합이나 은밀한 거래라는 자의식이 없다. 정상적인 직무의 외양을 유지하는 데 공을 들인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 생존자 이춘식씨. 이씨를 포함한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묻는 재판이 내부자들의 세계에서는 거래와 흥정의 대상이 되었다. ⓒ시사IN 신선영
‘질문은 되지만 개입은 안 된다 규칙’은 내부자 게임에서 이렇게 작동한다. 국회가 탐내는 법원 최고의 자원은 뭘까? 선거법과 정치자금법 등 선거범죄 재판이다. 선거범죄 재판은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의 명줄을 직접 틀어쥐기 때문에도 중요하지만, 법 자체가 자의적이고 모호하기로도 악명이 높다. 벌금 100만원이면 당선무효가 되고 그 아래면 살아남는다. 어느 정도의 위반이 100만원짜리고 뭐가 80만원짜리인지 설명하는 딱 떨어지는 법리는 없다. 국회의원들은 선거범죄 사건이야말로 정치적 고려에 좌우되는 재판이라고 확신한다. 검찰도 기소할 때 여야 균형을 맞추고, 법원도 여야 균형을 어느 정도 고려해서 ‘날린다’는 믿음이 국회에서는 상식으로 통용된다.
그러니까 국회의 눈에 선거범죄 재판은 재판의 외양을 띤 정치투쟁이다. A 의원은 민주당 의원들의 선거범죄 사건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법원행정처에서 알아봐주는 역할을 했다. 그는 그 사실이 숨길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때 검찰이 야당 죽이기로 나와서 우리한테 무리한 기소를 남발했거든. 억울한 사건이 정말 많았어. 그래도 내가 행정처랑 말이 통하니까 진행 상황을 물어보지. 무죄 써달라, 80만원만 해달라 그렇게는 말 안 해. 그건 재판개입 청탁이지. 진짜 억울하다 싶은 사건들은, 억울하다고 하니 본인 이야기를 들어봐달라, 기록을 꼼꼼히 봐달라, 그렇게 말하지. 그게 다야.” 그는 2004년 열린우리당 시절을 아프게 회상했다. “총선에서 과반을 만들어놓고 선거법으로 줄줄이 날아가면서 과반이 무너졌지. 세상에, 여당이 어떻게 바보같이 그러나. 재선되면 억울한 의원 나오지 않게 해야겠다 생각했지.”
A 의원의 이야기는 많은 단서를 담고 있다. 선거범죄 사건은 검찰 기소가 무리라 해도 법원에서 걸러진다는 보장이 없다고 의원들은 믿는다. 법 자체도 ‘100만원 기준선’도 자의적이고 모호해서 그렇다. 야당 시절에는 정치 탄압을 받기 때문에 정치가 중요하고, 여당 시절에는 받아야 할 보호를 못 받으면 억울하니까 정치가 중요하다. 국회의 어법에서 여당이 받아야 할 보호를 못 받았다는 말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검찰·법원과 ‘조율’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을 돌려 하는 것이다. 야당은 이것을 의원 개인기에 의존하지만 여당은 민정수석 업무라는 뜻도 깔려 있다. 열린우리당의 과반이 무너지던 시절 노무현 청와대의 민정수석 계보는 문재인·전해철 라인으로 이어지는데, 둘 다 법원과 검찰 경험이 없어서 민정수석에 적합하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그것도 따져보면 이런 맥락에서 나온 얘기다.
지난해 3월18일 KTX 해고 여승무원들이 2015년 대법원의 판결 이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동료가 묻힌 곳을 찾았다. ⓒ시사IN 신선영
“우리도 양승태 마음을 이해는 한다고”
이렇게 되면 법리보다 정보가 중요해진다. 법원 내부 돌아가는 분위기가 중요해서 “진행 상황을 물어보는” 사람이 필요하고, 법원 안으로 유리한 정보를 집어넣는 게 중요해서 “기록을 꼼꼼히 봐달라”고 말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내밀한 정보는 신뢰가 없으면 얘기를 안 해줘. 말이 나가면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법사위에서 판사들한테 호통 치는 의원들 있지? 유튜브 스타도 되고 판사들도 굽실거려주지만, 그거 미련한 짓이야. 우리는 언제, 어떤 판사를, 어떤 사건으로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이야.” 즉, 누가 내부자인지가 중요하다. 이 게임의 판을 깰 사람은 끼워줄 수 없다. 장기 거래를 하면서 평판을 쌓은 사람만 끼워줄 수 있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B 의원도 비슷한 취지로 이런 말을 했다. “인사청문회에서 대법관 후보 낙마는 2012년에 딱 한 명 나왔다. 헌법재판관은? 전효숙, 이동흡, 조용환, 김이수, 이유정…. 왜 이리 차이가 나겠어? 대법관은 언제든 자기 사건을 만질 사람이니까 아무도 먼저 나서서 때리질 않아. 그랬다가 못 날리면 자기만 찍히거든.”
민주당 의원실의 보좌관 C는 법사위 베테랑이다. 그는 현역 의원들보다 좀 더 편하게 ‘이 바닥 돌아가는 방식’을 설명했다. “재판은 안 건드려. 서로 광을 파는 거지(웃음). 국회에서 궁금한 사건 중에 법원이 생색낼 수 있다 싶은 건 법원행정처 차장이나 때로 처장이 직접 의원한테 알려주지. 그리고 의원은 그걸 당사자한테 알려주고. 나쁜 소식이라도 상관없어. 알려주면 고마워해. 우연히 결과가 좋았잖아? 그러면 의원이 힘써줬다고 당사자는 생각해. 오해하도록 놔두지 그냥.” 그가 보기에 이런 시스템이 유지되는 이유는 법원이 근본적으로 외부에 의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탄희 같은 젊은 판사는 그런 게 충격이었을 수 있지만, 법원행정처가 그런 일을 안 하면 법원이 예산도 못 따고 입법과정에 의견도 못 내. 입법권이나 행정권은 선출된 권력 손에 있으니까 사법부는 어떻게든 딜을 해서 받아와야 굴러가는 구조라고. 그래서 우리도 양승태 마음을 이해는 한다고. 그런데 딜에 재판을 집어넣었잖아. 그건 안 되지. 양승태 대법원은 기본 룰을 건드렸지.” 모든 과정은 ‘질문은 되지만 개입은 안 된다 규칙’ 안에서 움직인다.
그런데 정말로 질문과 개입의 경계선이 그렇게 깔끔할까? 법원행정처 사정에 밝은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기록을 꼼꼼히 봐달라”는 말을 듣고 씩 웃었다. “그게 일종의 암호다. 법원행정처가 그 말을 판사에게 전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일단 전달받은 판사라면 누구나 압력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그게 설마 진짜로 기록 열심히 보라는 뜻이겠냐고(웃음).” 그는 의원이 법원행정처에 진행상황을 물어보는 것도 실질적으로 재판 개입 효과를 낸다고 본다. “알아봐 주려면 재판부에 물어봐야 되잖아. 판사한테는 그런 질문도 시그널이야.”
서울중앙지방법원(서울중앙지법)은 정권과 국회가 관심 가질 권력형 형사사건이 몰리는 곳이다. 그래서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은 핵심 요직이다. 법관 사회에서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은 청와대가 직접 인사를 챙긴다고 알려져 있다. 그리고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이 선거전담부 부장판사를 앉힌다. “그런 시그널을 알아챌 부장들로 선거전담부를 꾸린다고 보면 된다. 거기서 ‘기대’대로 해낸 판사들이 다시 좋은 자리로 승진하는 거고.”
법원행정처는 심지어 선거범죄 사건을 물어보는 의원들에게 ‘법률 컨설팅’을 했다. 자유한국당 홍일표 의원은 판사 출신 국회의원이다. 19대 국회에서 양승태 대법원의 상고법원 입법 작업을 앞장서 도왔다. 2016년 20대 총선 과정에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임종헌 당시 법원행정처 차장은 양형위원회 운영지원단장 구민경 판사에게 ‘홍일표 의원의 방어방법과 벌금 100만원 미만 선고 가능성’을 검토하라고 시킨다. 양형위원회는 조직도상 법원행정처 산하가 아니지만 법원행정처는 그런 경계를 쉽게 넘나들었다. 2016년 11월23일,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검토’ 문건이 임종헌 차장에게 보고된다. 문건에는 방어 방법과 예상 벌금액을 검토한 내용이 담겼다. 임 차장은 이를 홍 의원에게 전달했다. 검찰은 또, 법원행정처가 민주당 유동수 의원의 선거법 사건에 대해서도 벌금 수위를 검토해준 문건을 확보했다.
이쯤 되면 질문과 개입의 경계선을 긋기가 꽤 어려워진다. 질문은 자체로 일선 판사에게 강력한 시그널이 된다. 애초에 그런 신호를 알아챌 판사들을 권력의 관심 사건이 몰리는 재판부로 보내는 인사 구조가 있다. 재판 당사자의 질문을 받고 답을 하는 과정에서 ‘법률 컨설팅’ 형태로 개입이 이뤄지기도 했다. 결정적으로 이런 질문은 내부자들만 할 수 있다. 시민이 물어본다고 답해주지 않는데, 여기서 이미 공정성이 무너진다. 질문까지는 괜찮다는 착시는 여당과 야당이 다 질문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생긴다. 국회를 기준으로 보면 질문은 여당과 야당 둘 다 쓸 수 있는 공정한 무기다. 하지만 내부자 게임의 렌즈로 바꿔 보면, 여당과 야당 모두 내부자여서 가능한 ‘질문의 특권’을 누린다. ‘질문은 되지만 개입은 안 된다 규칙’은 이 특권을 얼버무린다.
양승태 대법원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가운데)을 눈엣가시로 여겼다. ⓒ연합뉴스
시스템에 내재한 ‘사법농단’ 위험
질문과 개입의 사이는 경계선보다는 미끄러운 비탈길에 더 가깝다. 거기에는 실제로 경계선이 있는 게 아니라, 경계선이 있다고 믿고픈 내부자들의 욕망이 있다. 그 선이 있어야만 이 내부자 게임이 정상적인 직무 수행으로 보호받을 수 있다. 사법농단 사태를 양승태·임종헌 라인이 ‘선을 넘은 사건’으로 정리하려는 법원 주류 정서도 마찬가지다. 선을 넘은 사건이 되려면, 먼저 선이 있어야 한다. 실제로는 선이 없거나 흐릿하다. ‘질문은 되지만 개입은 안 된다 규칙’은 제2의 양승태·임종헌을 막을 힘이 없다. 이 규칙에 계속 매달리는 한 사법농단 사태는 특정인의 과속 스캔들이 아니라 시스템에 내재한 위험이 된다.
사법부의 후광을 걷어내고 법원을 관료조직처럼 관찰하면, 국회만큼 중요한 내부정치의 파트너가 금방 떠오른다. 청와대다. 관료적 내부정치의 최대 무대는 관료조직의 운명을 틀어쥔 청와대일 수밖에 없다. 법원의 청와대 쪽 파트너는 민정수석실이다. 이 관계에서, 법원 최대의 라이벌은 검찰이다. 법정에서야 판사가 최종 결정자이고 검사는 형사소송의 한쪽 당사자일 뿐이다. 관료적 내부정치의 무대에서는 이 힘이 완전히 역전된다.
이 무대에서 검찰이 베팅할 자원은 기소권이다. 정권 처지에서 보면, 권력형 사건을 불확실한 재판에 맡기느니 기소 단계부터 틀어쥐는 게 훨씬 깔끔하다. 특히 보수 정권들이 민정수석 자리에 어김없이 검찰 출신을 앉히는 이유다. 2015년 7월 시진국 기조실 심의관은 ‘BH 설득방안’ 문건에 “VIP 핵심 보좌진의 친검찰 구성의 틀도 유지”라고 썼다. 누가 봐도 판사의 문장이 아니라 정치투쟁 중인 관료의 문장이지만 스스럼없이 쓸 수 있었다. 첫째, 그게 사실이었다. 검찰 출신인 우병우 민정수석의 위세가 하늘을 찌를 때였다. 둘째, 당시 법원행정처의 분위기가 ‘판사 조직 대 검사 조직’의 총력전으로 상황을 바라보도록 몰아붙였다. 이 시기 법원행정처 문건은 관료적 내부정치의 관점에서 정무 분석과 기획안을 쏟아낸다.
사법부가 청와대에 베팅할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였을까? 조심성 많은 몇몇 법원행정처 소속 심의관들은 ‘재판 정보’까지만 베팅하고 재판 그 자체를 걸지 않으려 애쓴 흔적이 남아 있다. ‘질문은 되지만 개입은 안 된다 규칙’의 청와대 버전이다. 이것만 해도 문제지만, 거침없는 임종헌 차장은 베팅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상고법원 프로젝트가 물 건너가기 직전인 2015년 11월19일, 임 차장이 직접 보고서를 쓴다. 문건 제목은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역시 대외비다. 놀라운 문장이 나온다. “파급력이 큰 사건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건에서 BH와 사전 교감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물밑에서 예측불허의 돌출 판결이 선고되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 수행.” 내부정치에 재판 그 자체를 걸었다는 기록이다.
위 문장이 비극이라면, 다음 문장은 희극이다. “상고법원 추진이 BH의 비협조로 좌절될 경우 사법부도 BH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고지해야 함. 비록 원론적 차원의 중립적 사법권 행사 의지라 하더라도 민정수석에게 심리적 압박은 가할 수 있을 것.” 7월의 시진국 보고서는 여기까지는 가지 않았다. 11월의 임종헌 보고서에 이르면 ‘중립적 사법권 행사’는 법원의 의무가 아니라 내부정치의 위협 수단이 된다. 이제 법원은 수틀리면 헌법의 사명을 수행해버린다고 상대를 위협하는 지경에 이른다. 헌법의 세계와 내부자들의 세계가 어떻게 다른지, 이보다 극명한 장면도 흔치 않다.
관료적 내부정치에서 최대 자원을 틀어쥔 청와대는, 이 자원 쟁탈전을 관리하면서 관료조직들의 베팅을 접수한다. 그래서 민정수석의 조율 기능이 중요해지고, 양승태 대법원은 우병우 민정수석을 눈엣가시로 생각했다. 양승태 대법원은 한때 ‘우병우 패싱(우회) 전략’을 진지하게 논의했다. 현실은 반대여서 우병우 수석에게 법원이 패싱당해 상고법원이 엎어졌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 ⓒ시사IN 이명익
‘시진국 심의관’과 ‘임종헌 차장’의 거리
법원이 헌법적 구상에 따라 민정수석실과 연계를 아예 끊어버린다면 어떤 문제가 생길까. 상고법원과 같은 큰 의제가 없는 대법원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그래도 간단치 않다. 법원은 기본적으로 관료적 내부정치 기구로 설계되지 않았다. 관료적 내부정치를 해야 할 일은 일상에서 소소하게 쌓인다. 예산이 필요하면 법무부가 올려줘야 하고 기재부가 반영해줘야 하고 국회가 통과시켜줘야 하는데, 각각의 단계가 다 내부정치를 요구한다. 일일이 작업하는 건 벅찬 일이다. 법이 하나 바뀌어도, 그게 현실과 안 맞아서 소송이 폭주하면 뒷감당을 법원이 하게 된다. 입법, 예산, 조직, 티오 등등 의견 조율할 일이 많은데 법원은 기본적으로 관료정치 기구가 아니니 두 방향으로 자구책을 모색한다. 첫째, 민정수석을 통해서 원스톱으로 조율한다. 훨씬 편하다. 둘째, 법원행정처 기능을 갈수록 불려서 관료정치를 감당한다. 특히 민정수석의 조율 대상이 아닌 야당은 법사위원을 전부 찾아다니는 수밖에 없다.
법원은 선출로 뽑기 어려우므로 민주적 정당성을 주기 어렵고, 입법과 예산과 조직을 법원 밖 선출 권력에 의존해야 한다. 그것을 받아오려면 관료적 내부정치가 필요하다. 그런데 법원은 재판 독립이 핵심 가치이므로 관료적 내부정치에 맞게 조직을 꾸릴 수 없다. 이 딜레마를 그럭저럭 얼버무려온 장치가 일종의 관료정치 별동대 법원행정처였다. 법원행정처는 ‘질문은 되지만 개입은 안 된다 규칙’을 들고 내부자들의 세계에 초대받았고, 곧 내부자 게임의 핵심 선수가 될 수 있었다.
거래와 흥정의 원리 아래에서, 내부자 게임의 모든 참가자들은 저마다 합리적 선택으로 움직였다. 의원들은 생존과 재선을 추구했고, 정권은 국정과제가 실현되길 원했고, 법원은 선출 권력이 쥐고 있는 민주적 정당성으로부터 자원을 공급받아야 했다. 모두가 합리적으로 최선을 다한 결과 지독한 균형이 등장했다. 이 균형은 사법농단이 터질 가능성을 시스템적으로 안고 있는 악성 균형이다. ‘시진국 심의관’과 ‘임종헌 차장’ 사이의 거리는 생각만큼 멀지 않고, 미끄러운 비탈길로 이어져 있었다. 파국은 내재되어 있다.
사법농단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다면,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은 유난한 악당을 걸러내고 시스템을 원래대로 굴리는 방법이 아니다. 모두가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 등장한 이 악성 균형 자체를 흔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것이 3부(<시사IN> 제 640호)의 주제다. 그러려면 먼저, 내부자 게임이 법원 안을 어떤 방식으로 뒤틀었는지를 살펴야 한다. 이것이 2부(<시사IN> 제 639호)의 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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