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이 너무 길어서 나눠서 올립니다.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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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독립군의 형성과 간도에서의 독립전쟁
 
4. 봉오동 전투의 대승
 
(2) 삼둔자(三屯子), 후안산(後安山) 전투
 
대한북로독군부가 성립하여 독립군이 대병력을 형성하고 국내 진입작전을 준비하고 있을 때에도 소규모 독립군 부대들의 국내 진입 전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러한 작전의 한가지로서 1920년 6월 4일 북로제1군사령부의 협조하에 약 30명의 신민단 독립군 소부대가 함북 종성 강양동(江陽洞)의 일본군 순찰소대를 습격하여 교전한 뒤 돌아왔다. 이 보고를 받은 일본군 남양수비대장 아라요시(新美二郞) 중위는 다음날 1개 소대와 10여 명의 헌병을 인솔하고 불법으로 중국 영토인 화룡현 삼둔자로 침입해 왔다
 
* 대한북로독군부 : 1920년 대한독립군(홍범도), 대한국민군(안무), 군무도독부(최진동) 독립군 연합 부대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nh/view.do?levelId=nh_048_0040_0010_0020_0010_0040  
* 북로제1군사령부 : 사령부장/군사령관 홍범도
* 신민단 : 신민회. 대한신민회. 대한신민단. 19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조직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113  
* 함북 종성 강양동(江陽洞) : 현 온성군 남양노동자구 강양역 일대? (종성군 폐지)   https://maps.app.goo.gl/raERh3GVpo95NviT7 
* 남양 : 함북 온성군 남양노동자구 https://maps.app.goo.gl/xDX1JwtwiNVfwjR38 
* 아라요시 : 니이미 지로(にいみじろう,新美二郞/신미이랑) https://ja.wikipedia.org/wiki/%E6%96%B0%E7%BE%8E%E4%BA%8C%E9%83%8E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3974 
 
삼둔자는 김·박·최씨 성을 가진 한인 농민들이 정착하면서 생긴 동족 마을이었다. 봉오동 전투는 바로 이 삼둔자와 근처의 후안산에서 벌어진 소규모 전투를 시발로 하여 전개된 것이었다.
 
* 삼둔자(三屯子)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투먼/도문시(图们/圖們市) 월청진(月晴镇/鎭) 마파이/마패촌(马牌/馬牌村)  젠평툰/간평둔(间坪/間坪屯) > 바이두지도 https://j.map.baidu.com/7c/x69M 구글지도 https://maps.app.goo.gl/TjoMpRSd5SaiWzv2A  --> 구글 중국지도는 남서방향으로 약간 이동시키면 실제 위치와 일치됨
* 봉오동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주 투먼/도문시(图们/圖們市) 스셴/석현진(石峴镇/鎭) 수이난/수남촌(水南村) 투청/토성리(土城里), 가오리툰/고려둔(高丽/高麗屯) 일대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14487&localCode=krcn    지도 https://maps.app.goo.gl/Bw3VBSRxWepj8RJbA (토성리)  https://maps.app.goo.gl/ApyWVzLd17urhzq16 (고려둔)
* 후안산(後安山)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투먼/도문시(图们/圖們市) 홍광샹/향(红光乡/紅光鄕) 허우안산(后安山) https://j.map.baidu.com/ab/UlBM (바이두) https://maps.app.goo.gl/AD2qChSSisu3wJxZ7  (구글)  
 
두만강을 건넌 일본군은 삼둔자에서 독립군을 발견치 못하자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 계속 독립군을 수색하며 침공해 왔다. 신민단 독립군 부대는 6월 5일 밤 10시경 삼둔자 북방의 고지에 잠복하여 기다리고 있다가 적에 기습을 단행하여 많은 손실을 입혀 패주시켜 버렸다. 이것이 바로 삼둔자 전투로서 적을 유인·기습한 소규모 개막전의 성격을 띠었다고 볼 수 있다. 어두운 밤에 접전이 되었으므로 피아의 손실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전투 이후 일본군 야쓰가와(安川) 추격대대가 원병으로 파견되는 정황을 보면 일본군이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
 
* 야쓰가와(安川) : 야스카와 지로(安川二郎)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3974 
 
함경북도 나남에 사령부를 두고 두만강을 수비하던 일본군 19사단은 앞의 남양수비대를 간도로 침입시켰으나 그러한 작은 병력으로는 독립군 부대를 ‘토벌’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이 ‘토벌’될 위험에 빠질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따라 19사단 사령부는 독립군의 침입을 구실로 대부대를 출동시켜 아예 독립군의 근거지를 없애버리겠다고 소좌(少佐) 야쓰가와(安川)를 지휘관으로 하는 ‘월강(越江) 추격대대’를 급히 편성하였다. 이 월강추격대대의 편성과 병력은 아래와 같다.
 
* 함경북도 나남 :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  https://maps.app.goo.gl/oXDyQSfJU8AgawHt5 
* 월강(越江) 추격대대 : 삼둔자전투 참패를 설욕하고 독립군 토벌을 위해 만든 부대
 
보병 제73연대 제10중대 70명(가미다니(神谷)대위 지휘)
위 연대 기관총 1소대 27명(시야마(紫山)준위 지휘)
보병 제75연대 제2중대 123명(모리(森)대위 지휘)
헌병대 11명 및 경찰대 11명
 
여기에 아라요시가 이끄는 30∼40명 규모의 남양수비대 병력이 합세하였으니 봉오동 전투 당시 출동한 적군의 전 병력은 310명 내외 규모였다.
 
일본군 추격대대는 당시 중국령인 간도에 아무런 사전 통고도 없이 불법적으로 월경하였다. 이들은 6월 6일 밤 9시부터 7일 새벽 사이에 두만강을 건넜다. 일본군은 7일 새벽 세시 반 경에 독립군의 본거지인 봉오동을 공격할 계획이었다.
 
후안산 전투는 6월 6일 밤 12시경부터 7일 새벽 2시 반까지 후안산 마을과 고려령 남쪽 기슭에서 야쓰가와 추격대대와 최명극이 인솔한 모연대(군자금 징수대) 사이에 갑자기 벌어진 소규모 전투이다. 즉 일군 추격대대의 일부 부대와 약 25명의 독립군 모연대가 뜻하지 않게 충돌하여 총격전을 벌였던 것이다. 이 전투에서 양 측이 다 소수의 인명 피해를 냈다.
 
 
일본군이 그린 삼둔자 부근 전투약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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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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