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이 너무 길어서 나눠서 올립니다.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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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독립군의 형성과 간도에서의 독립전쟁
5. 노두구(老頭溝) 전투
홍범도는 봉오동 전투 직후 정일제1군사령장관 명의로 간도 국민회장 구춘선에게 의사를 보내주도록 요청하여 부상당한 일부 병사들을 치료시키는 한편 전열을 재정비하였다. 그는 다시 있을지도 모르는 일본군의 대규모 침입에 대비하여 6월 중순경 두만강 연안에 일부 부대원을 파견하여 엄중한 경계망을 갖췄다. 그리고 그달 21일에는 북로군정서를 제외한 각 독립운동 단체들과 2차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앞으로의 독립전쟁에 대비한 군량 비축과 무기 수입 방법 등을 의논하였다.
* 노두구(老頭溝) : 지린/길림 옌벤/연변 룽징/용정시(龙井/龍井市) 라오터우거우진(老头沟镇) https://maps.app.goo.gl/724spggLjAV62Fi26
* 북로정일제1군사령부(北露征日第1軍司令部) : 대한북로독군부(大韓北露督軍府). 1920년 5월 북간도 지역의 항일 독립군 연합부대. 대한국민회군(안무) + 대한독립군(홍범도) + 군무도독부(최진동)
* 정일(征日) : 일본을 정벌
* 정일제1군사령장관 : 정일제1군사령부장(부장). 홍범도
* 구춘선(具春先) : 조선말 궁궐수비장 출신. 간민교육회 등 교육활동. 대한국민회 활동. 무장독립운동에 참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6076
6월 말경 홍범도는 대한북로독군부 산하 약 400명의 직속 부대원을 인솔하고 간도의 연길현 의란구(依蘭溝)로 주둔지를 옮겼다. 봉오동 전투 직후 간도 일본 영사관은 전전긍긍하며 매우 긴장하였다. 그래서 영사관의 일본 경찰은 독립군 및 그 가담자에 대한 수색, 체포와 주민들에 대한 동정파악에 열을 올리며 간도 일대에서 분주히 준동하였다.
* 서간도 : 백두산(동)-단동(서)의 압록강 북쪽. 랴오닝/요녕성 동부, 지린/길림성 남부
* 동간도(북간도) : 백두산(서)-옌벤/연변지역의 두만강 북쪽 http://bit.ly/13m1llR
* 연길현 의란구(依蘭溝)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옌지/연길시(延吉市) 이란/의란진(依兰镇/依蘭鎮)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0145&localCode=krcn https://maps.app.goo.gl/McwGfXKxCtAwK3tH8
* 봉오동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주 투먼/도문시(图们/圖們市) 스셴/석현진(石峴镇/鎭) 수이난/수남촌(水南村) 투청/토성리(土城里), 가오리툰/고려둔(高丽/高麗屯) 일대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14487&localCode=krcn https://tinyurl.com/yksc4cyw (구글어스) https://maps.app.goo.gl/tzc1x94VB7V9VSi26 (구글지도)
* 간도 일본 영사관 : 간도 총영사관. 1909년 중국과 불평등 조약인 “간도 협약”을 체결하여, 일제가 간도 용정(옌벤/연변 롱징/룡정시)에 대륙 침략 정책의 일환으로 세운 총영사관.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8164&localCode=krcn
간도 일본영사관의 국자가(局子街)·두도구(頭道溝) 분관 소속 경찰과 함경북도 각 경찰서 소속의 경관 등 46명은 히까다니(光谷宗助) 경부 인솔하에 7월 8일부터 합동 수색작전을 벌였다. 이들은 연길현으로 이동한 독립군의 동향을 탐지하면서 쉬구(西溝)를 거쳐 7월 11일에 연길현 노두구 탄산리(炭山里) 방면으로 진입하였다. 홍범도는 130여 명의 부하들을 데리고 탄산리 근처를 지나다가 일경이 오는 것을 탐지하였다. 그는 야산 참나무 숲의 세 고지에 부하들을 잠복시켰다. 산 아래 밭에는 보리가 한창 피어 무성한데 일경들이 허리를 굽히고 보리밭을 헤치며 오는 것이었다.
* 국자가(局子街) : 옌지/연길시 옛이름이자 현재 시 중심가.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옌지/연길시(延吉市) 쥐쯔제/국자가(局子街)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0144&localCode=krcn https://maps.app.goo.gl/eyuRTD2a5oQaUcCP7
* 두도구(頭道溝) : 간도협약 후 일제가 영사관 분관 설치.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두다오/두도진(头道镇/頭道鎮) https://maps.app.goo.gl/8H72BqeiJXRWo8556
* 히까다니(光谷宗助/광곡종조) : 히카리다니/미쓰야/미츠다니 소스케?
* 경부 : 일제시대 경찰서장 계급. 고등문관시험 합격자 신규임용. https://tinyurl.com/3c3y3ehf
* 연길현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옌지/연길시 https://maps.app.goo.gl/rTpSjh2sboZrWL84A
* 쉬구(西溝) : 서골. 지린/길림성 옌볜/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맹산구(孟山沟/孟山溝) 서골 또는 멍산시/맹산서구(孟山西沟/孟山西溝) https://j.map.baidu.com/e2/X-9M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1564&localCode=krcn https://www.facti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3344
홍범도는 전 장병을 급히 전투태세에 들어가게 하였다. 그는 “내가 쏘기 전에는 쏘지 말라! 탄환은 생명이다! 맹사(盲射: 목표를 겨누지 않고 함부로 쏨)는 절대로 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적을 노리고 있었다. 적이 보리밭을 빠져나와 막 산을 오르려 하였다. 이 때 범도(홍범도)가 총을 발사하였다. 이에 총사격이 시작되었다. 일경은 갑자기 맹렬한 사격을 받고 마구 쓰러졌다. 혼비백산한 일경은 많은 사상자를 내고 도망쳐 버렸다. 오후 6시경부터 8시 10분경까지의 치열한 전투가 끝난 뒤 홍범도는 전멸시키기 전에 전리품을 수습하는 일은 위험하다고 하며 철저한 수색 후에 전장을 정리하여 많은 무기를 얻었다. 홍범도는 후일 이 전투에서 “일병 100명을 몽땅 다 잡고 무장을 빼앗았다.”고 약간 과장되게 회상하였다.
이 전투가 바로 노두구 전투이다. 지금까지 학계에는 별로 알려지지 못했으나 이 전투로 간도 일본 영사관 경찰이 큰 손실을 본 것이었다. 전투 직후 일경은 니시다(西田) 순사부장도 중상을 입었으며 위기에 빠진 일경을 구하기 위해 용정(龍井)의 영사관 본관과 각 분관에서 42명의 경관을 급파하였다고 간도 총영사에게 보고하였다. 또 당시 북로군정서에서 활동 하던 이정(李楨)은 그의『진중일지』7월 23일자에서 “홍범도 장군은 부하 1중대를 거느리고 노두구 방면에서 일본 영사관원 28명과 조우 격전하여 22명을 사살하였는데 독립군 측에는 사상자가 전혀 없었다.”라고 기록했다.
* 순사부장 : 한국 경찰계급 중 경사에 해당. 순사(순경)와 경부보(대략 경위) 사이에 있던 하위 간부 계급
* 용정(龍井) : 지린/길림 옌벤/연변 룽징/용정시(龙井/龍井市) https://namu.wiki/w/%EB%A3%A1%EC%A0%95%EC%8B%9C https://maps.app.goo.gl/kSMV5Vvz6QdF6zTv7
* 이정(李楨) : 북로군정서 연대장. 김좌진 장군 비서 을 역임하며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나, 1924년 변절 대한독립군단 정보를 모두 밀고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0%95_(1895%EB%85%84)
* 진중일지 : 이정(李楨) 이 청산리전투를 앞두고 북로군정서 내부 동향을 날마다 기록한 전장의 일기. 독립운동사 자료집에 수록.
노두구 전투 승리의 소식은 간도 각지에 파다하게 퍼졌다. 동포들은 봉오동 전투와 이 전투가 끝난 뒤인 7월 중순경에 홍범도 부대에 대한 대대적 환영회를 열어 주었다. 특히 간도 국민회의 서부 분회, 옹성라자(甕聲磖子) 국민회와 숭례향(崇禮鄕) 동포들은 공동으로 홍범도 부대의 전승 축하회를 열어 동포들의 감사를 표하고 독립군의 노고를 위로하였다. 이 대회는 국민회 대표의 개회사와 환영사·격려사·예물증정·홍범도의 답사가 있었고 식이 끝난 뒤에는 큰 잔치가 베풀어 졌다.
* 간도 국민회의 : 국민회, 대한국민회. 1914년 이동휘, 구춘선 등과 옌벤/연변 롱징/용정에서 조직했던 독립운동단체. 간도지역 자치단체를 통합하고, 최진동, 홍범도 부대 등을 통합, 지원. 조선독립기성회 - 대한국민회 - 간도대한국민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0514 대한국민회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013
* 옹성라자(甕聲磖子) 국민회 : 지린/길림 옌벤/연번 안투/안도현(安图县/安圖縣) 밍웨이/명월진(明月镇/鎭) 일대. 웡셩라쯔/웡셩라자/옹성랍자(瓮声磖子). 대한국민회(大韓國民會)의 지회(제15지회) 중 하나 https://maps.app.goo.gl/1FqtMLPt333esw4x6
* 숭례향(崇禮鄕) : 지린/길림 옌벤/연번 안투/안도현(安图县/安圖縣) 밍웨이/명월진(明月镇/鎭) 편입
이 때 홍범도는 다음과 같은 답사를 하였다.
“나는 국권의 회복을 뜻한 이래로 이미 10년의 성상(星霜)을 지냈으며 공공연하게 독립의 의군(義軍)을 일으켜 한족(韓族)의 독립을 힘써 외친 이래 1년 반을 지냈다. 그 사이에 고국산천을 버리고 다른 나라의 영토에 유리 전전하여 비참한 생활을 꾸려나가고 있는 우리 동포들로부터 돈과 곡식의 의연(義捐)을 받은 것이 참으로 많은 바 있다. 이제 만일 우리의 소지(素志: 독립에 대한 평소의 뜻)가 좌절되거나 일본 내지 세계 각국의 조소(嘲笑: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면 반드시 우리들은 물론 고통스러운 바가 될 뿐 아니라, 우리 의군을 위하여 돈과 곡식을 제공하고 자기의 생활에 고통을 느끼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 동포는 우리들에 대하여 독립의 미명(美名)을 빙자한 강도단이라고 하여 우리를 버릴 것이고 그리하여 우리는 마침내 천지에 몸을 둘 곳이 없기에 이를 것은 불을 보는 것처럼 분명한 일이다. 우리들 독립의군의 일단(一團)은 일의 성(成), 불성(不成)을 논하지 않고 오직 죽음이 있을 뿐이다. 나는 최후의 한 사람까지 소지관철에 분투함으로써 한족독립을 최후까지 힘을 다하여 외쳐, 죽은 후에야 그쳐야 한다는 것을 항상 부하에게 훈시하고 있다….”
-『현대사자료』27, 360면에서 -
* 요약 : ㄱ) 지원해 준 동포들 기대에 부응 ㄴ) 독립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비웃음을 받게 된다면, 동포들에 면목이 없다 ㄷ) 독립을 위해 마지막 한 사람까지 목숨을 바쳐 싸우겠다
* 성상(星霜) : 별과 서리. 1년(의 주기)을 의미.
* 의군(義軍) : 정의를 위해 자발적으로 조직된 군대
* 의연(義捐) : 사회적 공익이나 자선을 위하여 돈이나 물품을 냄. 의로운 기부
* 미명(美名) : 그럴듯하게 내세운 명목이나 명칭.
* 일단(一團) : 한 집단
* 일의 성(成), 불성(不成)을 논하지 않고 : 결과의 성공이나 실패에 연연하지 않고
* 소지(素志) : 평소에 늘 지니고 있는 생각.
* 소지관철에 분투 : 평소에 품고 있던 뜻을 끝까지 관철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우고 노력한다
간도 지방의 한민족 동포들은 봉오동 전투와 노두구 전투에서 연달아 일본군경을 격파한 홍범도의 이러한 애국 애족적 열성에 감복하여 그를 심히 숭배하고 존경하였으며 이제 한민족의 독립 가능성을 믿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실제로 일제의 비밀보고서에는 위와 같은 내용을 보고하는 기록이 있다. 이 가운데는 심지어 홍범도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의란구 지방의 민심은 대체로 전시 기분을 띠고 있는 흥분상태에 있으며 독립군의 제반 준비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일본군과의 교전이 곧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한 내용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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