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이 너무 길어서 나눠서 올립니다.
 
홍범도 생애와 독립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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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장 독립군의 형성과 간도에서의 독립전쟁
 
7. 일본군의 ‘간도출병’과 홍범도 연합부대의 성립
 
일제는 중국군을 동원한 독립군 ‘토벌’이 실패로 돌아간 후 간도에 일본군을 직접 출동시켜 독립군을 공격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간도는 중국 영토로 되어 있었으므로 일본군이 중국의 주권을 침해하며 불법으로 침입할 구실이 없었다. 이에 일제는 그들이 매수하여 조종하는 한 마적단으로 하여금 1920년 10월 2일 훈춘의 일본영사관을 습격, 방화케 하였다. 이것이 유명한 ‘훈춘사건’이다.
 
* 마적단 : 마적(馬賊)은 말을 타고 떼를 지어 다니는 도적. 주로 청나라말-일제 만주국 시절 만주 지방에서 활동한 마적 지칭  https://namu.wiki/w/%EB%A7%88%EC%A0%81 
* 훈춘 일본영사관 : 훈춘 일본 영사 분관. 지린/길림 훈춘/혼춘시(珲春/琿春市) 신안지에다오/신안가도(新安街道) 신안로(新安路) 훈춘시 공안국건물 ?  https://maps.app.goo.gl/yUJQ2vT7rUQT2gaf7 
* 훈춘사건 : 혼춘참변. 3·1운동 이후 활발해지는 한국독립군의 활동을 봉쇄하기 위해, 일본은 대규모의 정규군을 만주로 투입하여 한국독립군을 대대적으로 토벌 준비. 중국영토에 일본 정규군을 출병시키기 위해 중국 마적을 매수하여 혼춘의 일본총영사관을 습격하도록 흉계를 조작. 중국정부 항의에도 독립군 소탕작전이 개시. 무고한 재만한국인 800여명 무차별학살.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927 
 
사건 직후 일제는 일본영사관을 보호한다는 구실로 함북 나남에 사단 본부를 두고 있던 19사단의 한 대대를 우선 훈춘에 불법으로 파견하였다. 일본 정부는 10월 7일에 일본 육군성이 제출한 ‘간도지방 불령선인 초토계획’을 승인하고 일본군의 간도 출병을 결정하였다. 그 뒤 일본 정부는 중국 중앙정부에 일본군의 ‘출병’을 승인해 주도록 압력을 가했으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와 일본군은 친일적 성향을 보이고 있던 만주 군벌 장작림의 묵인 하에 중국 정부의 의사를 무시하고 10월 14일 일본군의 ‘간도출병’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 함경북도 나남 : 함경북도 청진시 라남구역  https://maps.app.goo.gl/oXDyQSfJU8AgawHt5  
* 간도지역 불령선인 초토계획 : 1919-1920년 만주 무장투쟁이 활발해지자 일제 조선주둔군이 만주진입을 위해 마적단을 사주 훈춘시를 약탈하고, 일본시설을 공격하는 훈춘사건을 일으켜, 일본신민 보호 명분으로 일본군 파견. 한인 거주지 철저하게 파괴한 간도참변(경신참변) 독립군부대는 북만주로 이동.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2635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kc/view.do?levelId=kc_i400450&code=kc_age_40  
* 간도 출병 : 간도침략. 1920년 독립군의 무장 항일투쟁에 타격을 입자, 이를 소탕하고 한인 사회를 말살하기 위해 만주 간도 지역에 대규모 정규군을 불법 파견한 사건. https://namu.wiki/w/%EA%B0%84%EB%8F%84%20%EC%B0%B8%EB%B3%80 
* 장작림(張作霖) : 장쭤린(张作霖). 중화민국 봉천군벌 초대 수장. 일본 관동군에 의해 살해 당함. 일본을 견제한 반면, 한국 독립군에 대해서는 탄압
 
일본군이 불법적 간도 침입을 자행하면서 독립군 ‘토벌’을 위해 동원한 병력의 규모는 한국 주둔 19사단 전부, 20사단 일부, 그리고 러시아 혁명을 방해하기 위해 시베리아에 출동했던 연해주 주둔군의 11·13·14 사단의 일부 등 5개 사단에서 차출한 25,000여 명의 엄청난 규모였다.
 
일본군의 대략적 작전계획과 부대 배치를 보자. 일본군은 우선 바로 위에서 말한 25,000여 명의 병력과 남만주에 주둔하고 있던 관동군(關東軍)에서 동원한 병력으로 서·북간도의 독립군 부대 전체를 동서남북 사방에서 넓게 포위하여 그 포위망을 좁혀 들어 가려했다. 다음 그 포위망 안에서 다시 제19사단 주력 12,000여 명을 3개 지대(支隊)로 편성하여 간도를 갑·을·병의 3개 구역으로 나누고 각 지대가 오지 깊숙이 쳐들어가 독립군을 수색, ‘섬멸’한다는 것이었다. 갑구역은 이소바야시(磯林) 지대가 맡게 하였는데 담당구역은 훈춘-차무정재 방면이었다. 을구역은 기무라(木村) 지대가 맡았는데 서대파-하마탕-백초구(百草溝) 방면이 작전구역 이었다. 병구역은 아즈마(東) 지대가 맡았는데, 용정-연길-두도구·이도구 방면이었다.
 
* 관동군(關東軍) : 러일전쟁 후 1906-1945년 중국 둥베이/동북(東北)지방에 주둔했던 일본 육군 주력부대.  https://contents.history.go.kr/front/tg/view.do?treeId=0100&levelId=tg_004_2930&ganada=&pageUnit=10 
* 지대(支隊) : 본대에서 분리하여 독립된 작전을 수행하도록 편성한 부대
* 이소바야시(磯林)  : 이소바야시 나오아키(磯林直明) 소장
* 차무정재 : 지린/길림 옌벤/연변 훈춘/혼춘시(珲春/琿春市) 춘화진(春化镇/鎮) 다차오마오딩즈/대초모정자(大草帽頂子)  https://maps.app.goo.gl/WsCMkhHVgaH8Pgpd8  
* 기무라(木村) : 기무라 에키조(木村益三). 십리평 학살사건(스리핑/십리평에서 한인 30여 명을 학살한 사건)
* 서대파 : 왕청현 서대파(西大坡).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왕칭/왕청현(汪淸县/縣) 시다포/서대파(西大坡)  https://maps.app.goo.gl/Tqt2eS2sgEcrieH79  
* 하마탕/합막당(蛤蟆塘) : 러시아 프리모르스키 지방(연해주) 라즈돌노예(Раздольное/Razdolnoye). 1860년대 러시아 연해주의 라즈돌노예 강가에 형성된 재러 한인 마을..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95300140&localCode=cis  
* 백초구(百草溝) : 현 왕칭/왕청현(汪淸县) 바이카오거우/백초구진(百草沟镇/百草溝鎮) 바이카오거우/백초구촌(百草沟村/百草溝村)  https://maps.app.goo.gl/zDgUg8yNf2G1mVza9 
* 아즈마(東) : 아즈마 마사히코(東正彦). 청산리대첩(백운평전투, 어랑촌 전투 등)에서 매복으로 대패
* 용정(龍井) : 지린/길림 옌벤/연변 룽징/용정시(龙井/龍井市)  https://namu.wiki/w/%EB%A3%A1%EC%A0%95%EC%8B%9C https://maps.app.goo.gl/kSMV5Vvz6QdF6zTv7    
* 연길현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옌지/연길시  https://maps.app.goo.gl/rTpSjh2sboZrWL84A 
* 두도구(頭道溝) : 간도협약 후 일제가 영사관 분관 설치.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두다오/두도진(头道镇/頭道鎮)  https://maps.app.goo.gl/8H72BqeiJXRWo8556  
* 이도구 : 청산리전투 현장.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시청/서성진(西城镇/鎭) 얼다오/이도촌(二道村)  https://maps.app.goo.gl/MuVSBJ7GtkLGyy877  
 
일본군은 이미 10월 7일부터 간도에 침입하기 시작했고, 홍범도와 김좌진 등의 독립군 부대를 상대할 제19사단의 아즈마 지대(사령관 육군 소장 아즈마 마사히꼬) 약 5,000명의 병력은 10월 15일 간도 용정에 출동하여 작전을 개시하였다. 아즈마 지대는 증강된 2개 보병 연대와 기병 연대, 포병·공병·헌병 등의 혼성부대였다.
 
일본군은 독립군 ‘토벌’의 작전 목표를 2단계로 나누어 세웠다. 제1단 계에서는 작전 개시일로부터 1개월 이내에 독립군을 철저히 색출하여 ‘섬멸’하고 반복 토벌을 되풀이 실시, 독립군의 무장항쟁 근원을 철저히 없앤다는 것이었다. 제2단계에서는 1단계가 끝난 후부터 다시 1개월 이내에 촌락에 잠복하여 있는 독립군 지원세력과 민간인 독립운동가들을 철저히 수색하여 무장투쟁은 물론 비무장독립운동까지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계획에 의거하여 일본군은 각 방면에서 포위망을 좁혀 들어 오기 시작했다. 이소바야시 지대는 10월 14일에 훈춘하(琿春河) 골짜기에 출동하였으며 기무라 지대는 10월 17일 왕청 방면으로 출동하였다. 아즈마 지대는 이도구 어랑촌 부근에 있는 독립군들을 추적하여 10월 18일에 출동하였다.
 
* 훈춘/혼춘하(珲春河/琿春河) : 남서방향으로 흘러 훈춘/혼춘시를 가로질러 두만강으로 가는 지류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07049&localCode=krcn  https://maps.app.goo.gl/nNWWyBv9iEzrsFwMA 
* 왕청현 서대파(西大坡)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왕칭/왕청현(汪淸县/縣) https://maps.app.goo.gl/AfUzHpbEydLk2QKF6 
* 이도구 어랑촌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시청진/서성진(西城镇/鎭) 위랑/어랑촌(渔浪/漁浪村) https://maps.app.goo.gl/3c6wAAh482Ax98waA  https://www.okpedia.kr/Contents/ContentsView?contentsId=GC05312035&localCode=krcn  
 
한편 이와 같은 엄청난 일본군의 ‘토벌’ 공세에 직면하여 홍범도 부대를 비롯한 독립군 부대들은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었는가?
 
10월 초까지 다수의 독립군 부대가 홍범도 부대 근처로 이동해 온 뒤 그 달 중순까지는 의민단(義民團) 약 100명, 허근이 이끄는 의군부 약 300명이 추가로 집결해 왔다. 북로군정서는 9월 중순 서대파를 출발하여 10월 12∼13일경 화룡현 삼도구(三道溝) 청산리(靑山里)로 옮겨왔다. 이리하여 청산리 일대에는 도합 1,500 내지 2,000여 명에 달하는 많은 독립군 부대 병력이 집결하게 되었다. 이들 독립군 부대의 대표들은 강한 전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서로 연합해야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 의민단(義民團) : 1919년. 북간도에서 천주교 중심으로 의민단 창립. 방우룡, 허은 등. 임시정부 예하. 청산리전투 참여. 자유시참변 해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3224 
* 허근(許根) : 허재욱(許在旭). 허은, 허재근. 홍범도, 차도선 등과 함께 의병활동. 의군단 결사대장. 이르쿠츠크파 고려공산당 활동 https://search.i815.or.kr/dictionary/detail/print.do?id=16549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031  
* 의군부 : 1919년 4월 옌벤/연변 안투/안도현(安图县/安圖縣) 밍웨이/명월진(明月镇/鎭)에서 이범윤(李範允)·진학신(秦學新) 등이 조직. 어랑촌전투 참가. 자유시참변 이후 약화. 의군단(의군산포대) 그리고 대한독립의군부와 다른 조직임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3134 
* 화룡현 삼도구(三道溝) 청산리(靑山里) : 지린/길림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룽청/룡성진(龙城镇/龍城鎭) 칭산/청산촌(青山村)  https://maps.app.goo.gl/sKQdNHoTR34pozje6 
 
일본군의 간도 침입이 시작되었다는 정보에 접한 독립군 부대들은 10월 13일 이도구의 북하마탕에서 대표자 회의를 소집하였다. 여기에는 홍범도 부대 외에 국민회군·신민단·의민단·한민회군 등의 대표들이 모였다. 이 때 홍범도를 사령관으로 하여 하나의 연합부대를 편성하고 군사행동의 통일에 의한 연합작전을 전개하기로 합의하였다. 합의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이도구 북하마탕 : 지린/길림 옌벤/연번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시청/서성진(西城镇/鎭) 얼다오/이도촌(二道村) ?    https://maps.app.goo.gl/UWwQZ4fJe2Bs8Gta6 
* 국민회군 : 간도 국민회의 : 국민회, 대한국민회. 1914년 이동휘, 구춘선 등과 옌벤/연변 롱징/용정에서 조직했던 독립운동단체. 간도지역 자치단체를 통합하고, 최진동, 홍범도 부대 등을 통합, 지원. 조선독립기성회 - 대한국민회 - 간도대한국민회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0514  대한국민회군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78013
* 신민단 : 신민회. 대한신민회. 대한신민단. 1919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김규면 등이 조직. 완루구, 어랑촌전투 참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15113   
* 한민회군 : * 한민회(韓民會), 한민단(韓民團)·한민회군(韓民會軍). 3.1운동 후 이광택(李光澤)·황병길(黃丙吉)을 중심으로 혼춘(珲春/琿春市)에서 조직. 홍범도 지휘체계 하 편성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1625   
 
1. 4단(홍범도군을 국민회군에 포함시킴)의 무력으로 군사행동의 통일을 도모할것.
2. 국민회 군적(軍籍)에 있는 사람을 총동원하고 예정의 부서에 배치할 것.
3. 군량·군수품의 긴급 징집에 착수할 것.
4. 경찰대를 조직해서 각 방면에 밀행시켜 일본군대의 동정을 탐사할 것.
5. 일본군대와의 응전은 그 허(虛)를 찌르거나 혹은 산간에 유인하여 필승을 기하는 경우 외에는 전투를 개시하지 말 것.
 
이를 계기로 홍범도 예하 병력을 주력으로 한 ‘홍범도 연합 독립군부대’가 성립한 것이다. 위의 내용으로 보아 홍범도는 일본군과의 접전에 매우 신중을 기했다고 생각된다.
 
홍범도는 곧 있을 일본군과의 결전을 예상하고 이도구에서 연합부대의 병사들을 매일 훈련시키면서 독립전쟁을 대비하였다. 10월 중순경 간도 일본총영사관에서는 첩자를 동원하여 그런 상황을 아래와 같이 파악 하였다.
 
“홍범도의 휘하 주력 약 800명은 … 매일 교련을 행하고 있다. 홍(홍범도)의 최근의 의향은 ‘일본군대의 출동에 의해 독립군은 이제 일·중(일본·중국) 양국 군대와 경찰 때문에 압박을 받음이 심하여 행동을 견제 당하고 있으므로 이때 일거(一擧)에 조선땅을 침습(侵襲)하거나 또는 간도 내에서 일본군과 교전하거나 하는 하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하여 각 지방에 군수품 징발의 명령을 내리고 있다. 최근 약수동 이도구 방면에서 식량·담배·짚신 등의 징발을 하고 있다.”
 
* 약수동 : 지린/길림 옌벤/연번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시청/서성진(西城镇/鎭) 야오수이/약수동(药水/藥水洞)  https://maps.app.goo.gl/3PSpNC57evqm715M6  
 
이와 같이 홍범도 연합부대가 군사훈련을 강화하고 군수물자 조달에 열중하고 있을 때 다시 200여 명의 광복단 독립군이 합세하였다. 대부분의 독립군이 연길 방면인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였던 것에 비하여 광복단군은 서쪽인 안도현에서 동쪽으로 이동하여 홍범도 부대에 합류, 이채를 띠었다. 이는 홍범도가 평소에 광복단과 가까운 협조관계를 맺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 광복단 독립군 : 1920년 김성극, 전성륜과 이범윤 단장으로 추대 조직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05137 
* 연길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옌지/연길시  https://maps.app.goo.gl/rTpSjh2sboZrWL84A   
* 안도현 : 지린/길림 옌벤/연번 안투/안도현(安图县/安圖縣)  https://maps.app.goo.gl/jUcnK24faH7B8Xv97 
 
이제 홍범도 연합부대의 병력은 무려 7개 부대에 1,400여 명 내외에 달하게 되었다. 이들 독립군 부대는 각자의 단위부대를 그대로 유지한 채 홍범도 부대와 직접·간접적 협조관계를 유지하며 전투에 임하였고 경우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독자적 행동도 가능하였다.
 
홍범도는 북로군정서 부대가 청산리에 도착하자 일본군과의 결전에 대비한 연합작전을 협의하였다. 일본군의 정보자료에도 그러한 상황이 탐지되어 있으며 북로군정서에서 싸웠던 이범석(李範奭)도 독립군 부대들이 연합작전을 전개하기로 합의했다고 회고하였다. 특히 이범석은 홍범도 연합부대가 터시거우(두도구) 방면, 북로군정서가 중앙의 송림평(松林坪)을 맡았고 의군부가 무산간도 방면의 버들고개를 분담했다고 하였다.
 
* 북로군정서 -> 동로군정서 : 대한군정서. 북간도 서일 등이 대종교 중심(중광단)으로 1919년 결성. 김좌진, 이장녕, 김규식 등.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왕칭/왕청현(汪淸县/縣)의 시다포스리핑/서대파십리평(西大坡十里坪) 근거지.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24657  
* 이범석(李範奭) : 북로군정서 교관, 고려혁명군 기병대장, 광복군참모장, 대한민국 초대국무총리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44367 
* 터시거우(두도구)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토우다오/두도진(头道镇/頭道鎮)  https://maps.app.goo.gl/NDHs7K9HqCQ5Z3kC8  
* 송림평(松林坪)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룡성진(龙城/龍城鎮) 쑹위에/송월촌(松月村) https://maps.app.goo.gl/enwiGUVatrLB4cp29 
* 무산간도 : 무산군 주민이 두만강 건너 개간했던 지역.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난핑/남평진(南坪镇/鎭) https://maps.app.goo.gl/nuPA7kqDJHJi8RD16 
 
일본군이 삼도구 충신장 상촌(上村)에 도착하기 전날인 10월 19일에도 홍범도 연합부대와 북로군정서 수뇌들은 자리를 같이 하여 공동 대응 방안을 강구하였다. 이 때 북로군정서 부총재 현천묵(玄天黙)이 피전책(避戰策), 즉 이번은 분전의 좋은 기회가 아니니 은인자중하여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하는 주장을 펴서 여러 사람의 논쟁 뒤에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결정은 일본군의 대공세에 부딪혀 상황이 변함에 따라 싸우는 방향으로 바뀌게 되었다.
 
* 삼도구 : 지린/길림성 옌벤/연변 허룽/화룡시(和龙/和龍市) 룽청/룡성진(龙城镇/龍城鎭)  https://maps.app.goo.gl/aiVySyY1qrWaX6zf8 
* 삼도구 충신장 상촌(上村) : 청산리 계곡 초입?
* 현천묵(玄天黙) : 북로군정서 부총재, 대종교 계통 민족교육활동  https://encykorea.aks.ac.kr/Article/E0063441 
* 피전책(避戰策) : 적이 강할 때 정면충돌을 피하고 역량을 보존하려는 계책이나 전략. 
 
일본군과 격전을 바로 앞둔 독립군 장병들의 긴장된 분위기를 북로군정서 사령부에서 복무하던 이정은 다음과 같은 즉흥시를 지어 표현하였다.
 
* 이정(李楨) : 북로군정서 연대장. 김좌진 장군 비서를 역임하며 군자금을 모금하였으나, 1924년 변절 대한독립군단 정보를 모두 밀고  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0%95_(1895%EB%85%84)  
 
나무잎 떨어져 산모습 조용한데
하늘은 높고 달빛 더욱 밝구나.
木落山容靜 天高月影郞 (목락산용정 천고월영랑)
 
장사의 마음속엔 만마가 달리는데
새아침 기다릴 제 밤이 이리도 길구나.
壯士意萬馬 待旦夜漫長 (장사의만마 대단야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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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iv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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